2009년 6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아티스트가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미국 지상파 방송사들은 일제히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그의 사망 소식을 긴급 뉴스로 내보냈다. 나머지 대다수 매체들 역시 비중 있게 그의 부고 기사를 보도했다.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예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거였다.
주인공은 ‘팝의 황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던 마이클 잭슨(1958~2009). 그는 프로포폴 과다 투약으로 세상을 등졌는데, 당시 그가 숨진 병원과 자택 주변엔 수많은 추도 인파가 몰렸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 역시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애도를 표시했다.
그리고 올해 잭슨의 10주기를 앞두고 세계 대중음악계 안팎에서는 고인의 삶을 되새기려는 추모 열풍이 불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업은 헌정 앨범 제작이다. 한때 잭슨의 프로듀서였던 제리 그린버그가 주도하는 프로젝트로, 여기엔 한국 아이돌 그룹인 NCT 127이나 그룹 엑소의 멤버 레이 등도 참여한다. 앨범은 잭슨의 기일인 다음 달 25일 발매된다. 지난 3월 내한한 그린버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전 세계 슈퍼스타들이 앨범에 참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잭슨의 10주기에 관심이 쏠리는 건 그가 음악계에 남긴 유산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룹 잭슨파이브 멤버로 다섯 살 때 데뷔한 잭슨은 1969년 이 팀의 노래 ‘아이 원트 유 백’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영국 음악평론가 밥 스탠리는 ‘모던 팝 스토리’(북라이프)에 이 노래를 설명하면서 “엘비스 프레슬리만큼이나 카리스마 넘치는 확실한 스타가 탄생한 것”이라며 이렇게 적었다. “그는 늘 스타였고 그가 흑인이든 백인이든 전혀 개의치 않았던 많은 팬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프린스, 마돈나, 조니 로튼, 데이비드 보위는 물론 비틀스 이후의 그 어떤 가수나 밴드보다 위에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70년대에 잭슨이 팝 시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차지한 건 아니었다. 그가 전인미답의 성공 스토리를 써 내려간 건 성인이 된 뒤 79년 처음 내놓은 솔로 음반 ‘오프 더 월’이 성공하면서부터다. 특히 82년 발표한 앨범 ‘스릴러’는 1억장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켰다. 잭슨은 많은 트로피를 거머쥐었으며, 93년엔 그래미어워즈에서 ‘살아있는 전설(Living Legend Award)’ 부문 역대 최연소(당시 35세) 수상자가 됐다.
잭슨의 10주기를 앞두고 추모의 움직임만 있는 건 아니다. 비방전과 폭로전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영화 ‘네버랜드를 떠나며’는 ‘잭슨 불매 운동’을 일으키는 분위기다. 이 영화에는 잭슨이 연예인을 지망하는 어린이들을 성폭행했다는 폭로가 담겨 있었다. 논란이 확산되자 영국 캐나다 등 일부 국가 라디오 방송사들은 잭슨의 노래를 내보내지 않기로 했고, 10주기 기념 뮤지컬 제작도 잠정 중단된 상태다.
한동윤 음악평론가는 “아동 성추행 의혹 등 그의 어두운 역사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잭슨의 인기는 대단하다”며 “워낙 능력이 대단했던 아티스트였던 만큼 논란이 꾸준히 불거지더라도 그의 음악을 찾아듣는 사람은 줄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