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게임의 질병코드화’라는 ‘늑대’는 없다

입력 2019-05-06 20:15

행복의 추구는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삶의 목적이다. 갓 태어나선 행복에 이르는 길이 단순하다. 그저 엄마가 물려주는 젖을 빨고 엄마 품에 안기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현재 만족의 추구와 건강한 발달이 일치한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인생은 복잡해진다. 놀기도 해야겠지만 현재의 만족만을 추구하며 미래의 발전도 함께 얻기란 어렵다. 하여 당장 재미와 기쁨을 주는 ‘놀이’는 적절한 조절의 매커니즘이 필요해진다.

과거시대의 ‘놀이’는 그런 면에서 나름의 균형과 조절의 매커니즘이 존재했다. 놀 수 있는 장소와 시간, 도구가 한정적이어서 이러한 놀이에 일상생활이 방해될 정도로 빠져 있기란 어려웠다. 만화나 오락실게임도 장소와 돈, 시간의 제한을 받긴 마찬가지였다.

또 놀이 자체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친구나 간식, 그림, 음악 같은 놀이 속의 다양한 예술적 소구도 재밋거리로 작용했다. 놀이에 필요한 조건, 놀이 속의 다양한 문화적 특성이 놀이 자체에 과하게 빠지는 걸 어느 정도 막아 주었던 것이다.

지금의 온라인게임은 어떤가. 진료실에서 만난 한 친구는 평일 하루 10시간 동안 게임을 ‘사용’하고 있었다. 밤늦게 방에서 혼자 하기에, 가족이 쉽게 알 수도 없었다. 일상생활의 리듬은 깨져 버렸고 친구를 만나거나 평소 즐기던 다른 재미나 의미 있는 일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 친구에게 게임의 맥락(context), 즉 함께 즐기는 친구, 스토리, 영상, 음악 등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 ‘게임도’ 즐기는 대부분의 친구들과는 다른 ‘게임만’ 즐기는 차원으로 이동해 버린 것이다.

기쁨과 재미를 유발하는 물질과 행위는 뇌의 기쁨회로에서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게임 또한 그렇다. 하지만 조절력을 상실한 과도한 게임 사용은 기쁨회로가 오직 게임에만 반응하도록 만든다. 게임 자체의 놀이적 특성에, 언제 어디서나 쉽게 게임할 수 있는 환경, 강력하고 자극적인 보상, 랜덤 아이템 등의 사행성과 선정성, 수천억원대의 무분별한 게임광고 등이 더해져 일부 게임 사용자를 ‘게임사용장애’라는 의도치 않은 상황으로 몰고 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런 일부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게임 사용자들이 체계적 예방과 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를 국제표준질병분류11판(ICD-11)에 신설키로 했다. 기능 손상이 분명한 경우에 진단을 적용함으로써 불필요한 논란을 종식하고 건전한 게임 사용 촉진과 게임의 문화·놀이적 가치향상 활동도 촉진될 수 있다.

‘게임의 질병코드화’라는 늑대는 없다. 상황이 이렇게 명확한데도 “WHO가 ‘게임 질병코드화’를 추진해 모든 게이머를 환자로 만들고자 한다”고 외친다면, 이는 존재하지도 않는 ‘늑대’를 외치는 양치기 소년과 다르지 않다.

이윤 추구를 지상과제로 삼는 게임업계의 반응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게임과몰입 예방·치유업무를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라면 최소한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에 문체부가 WHO 협력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소통 없이 WHO에 ICD-11 개정 반대 서신을 전달했다는 소식은 매우 우려스럽다. 없는 ‘늑대’를 만들어 ‘마을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아울러 서신내용 공개를 통해 전달한 의견의 신빙성도 가려야 한다. 국가 신뢰가 걸린 일이기도 하다.

이해국 가톨릭의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