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가짜뉴스… 미술관 속으로 들어온 사회 이슈

입력 2019-05-06 20:23 수정 2019-05-15 18:19
빅데이터, 나나랜드, 가짜뉴스, 페미니즘 등 미디어에 등장하는 핫한 이슈들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왔다. 사진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불온한 데이터’전에 나온 슈퍼플렉스의 작품 ‘모든 데이터를 사람들에게’.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빅데이터, 블록체인, 나나랜드, 가짜뉴스, 페미니즘….

요즘 전시장에 가면 신문 사회·경제면에 나올 법한 이런 주제들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뿐 아니라 상업적인 화랑들까지 나서 사회를 달구는 이런 이슈를 기획전을 통해 풀어놓고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불온한 데이터’전(7월 28일까지). 전시장을 찾으니 벽면에 ‘모든 데이터를 사람들에게’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구호처럼 적혀 있다. 한글로 쓴 이 작품은 덴마크 작가 슈퍼플렉스의 작품이다. 2017년 현대차가 후원하는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터바인홀 전시 작가로 선정된 바 있는 작가 그룹이다. 당시 해외에서 선보였던 작품을 한국어로 다시 제작한 것인데, 데이터 자체가 거대한 권력이 돼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깔려 있다. 영국 작가 크리스 쉔의 작품 ‘위상 공간’은 전시장 바닥에 360개의 소형 로봇 공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별자리 같은 장관을 연출하도록 했다. 데이터의 수집과 소멸을 우주의 물리적 현상에 비유한 것이다.

영국 작가 레이첼 아라는 감시 카메라를 통해 관객 수를 집계해 이를 자신의 작품 가격에 반영시키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작품을 선보였다. 네덜란드 작가 하름 판 덴 도르펠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레프트 갤러리’를 내놓았다. 한국의 김실비의 영상작품 ‘금융-신용-영성 삼신도’는 신기술이 종교화되다시피 하는 현실을 유쾌하게 비꼰다. 박덕선 학예연구사는 “빅데이터가 예술에 어떻게 창의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뿐 아니라 첨단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작가들의 해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비나미술관의 ‘나나랜드’전에 출품된 구혜영의 ‘작명 쇼’. 사비나미술관 제공

서울 은평구 진관1로 사비나미술관의 ‘나나랜드: 나답게 산다’(7월 7일까지)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의 특징을 전시로 구현했다. 나나랜드는 영화 ‘라라랜드’에서 차용한 용어인데,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시선을 더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일컫는 말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내놓은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 10대 트렌드 중 하나로 꼽은 바 있다.

구혜영은 작품 ‘작명 쇼’에서 로또 기계로 내 이름의 작명가가 되는 유쾌한 경험을 제공하고, 윤정미의 ‘핑크&블루 프로젝트’에서는 나만의 인생샷을 찍을 수 있다. 천경우의 ‘포트레이트 메이드 바이 핸드’에서는 나의 얼굴을 글로 묘사하고 전시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때에 나 좋을 대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꼰대 세대들도 초대하는 전시다.
서울대미술관 ‘거짓말’전에 선보인 이수영의 ‘물귀신과 해병대’. 서울대미술관 제공

서울 관악구 관악로 서울대미술관 ‘거짓말’전(28일까지)에서는 예술가의 거짓말을 통해 우리 사회 이면을 돌아보게 하는 기획전이다. 이수영은 ‘귀신 잡는 해병대’를 패러디하듯 여자 귀신이 해병대 군 생활에 출몰하는 웃음을 주는 영상을 선보였고, 이병수는 ‘관악산 호랑이’가 실존하는 것처럼 탐사 텐트를 설치하고 연구자를 인터뷰하고 학술대회를 여는 가짜뉴스를 전시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페로탱갤러리 한국지점에서 여는 ‘기념비에 대한 부정’(6월 8일까지)은 뉴욕 페로탱 시니어디렉터인 발렌타인 브론델이 한국의 페미니즘 집회를 보고 영감을 얻어 기획했다. ‘청바지 꽃다발’을 통해 청바지에 부여된 카우보이 이미지를 전복하는 닉 도일 등 국내외 작가 12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