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부 : 더불어 살아가기 위하여>
<2부 : 공동체 균열 부르는 ‘신계급’>
<3부 : 한국을 바꾸는 다문화가정 2세>
<4부 : 외국인 노동자 90만명 시대>
<5부 : 탈북민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법>
첫 마디는 한숨 섞인 푸념이었다. “계절근로자 제도를 누가 이 따위로 만들었는지…. 고용허가제를 신청하려 해도 안 되고 답이 없다.” 계절근로자 제도와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근로자 고용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하지만 ‘쓸 만한’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농업 현장에서는 두 제도를 향한 불만이 적지 않다.
지난 1일 충남 논산시 은산면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만난 최덕선(51)씨는 2016년부터 하우스 농사를 해왔다. 베트남 출신 부인 응우엔 투렁(27)씨가 최씨에게 ‘한 번 해보자’고 말한 게 계기였다고 한다. 연간 1000만원 임대료를 내고 땅을 빌려 12동의 비닐하우스에 상추와 대파를 심었다. 비닐하우스 설비나 종묘 구매 등에 들어간 돈도 적지 않았지만 만 3년째 적자라고 한다. 예기치 않은 침수 재해, 가격 폭락에 흑자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최씨는 “들인 돈이 있어서 오기로 계속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수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도매가격이지만, 정작 최씨 부부의 고민은 다른 데 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일손이다. 최씨 부부는 일을 할 사람을 구하기 쉽지 않다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응우엔씨는 “한국 사람을 구하려고 해도 70대 이상 노인층 밖에 없다. 일당 7만5000원가량을 주는데, 노인층은 하루에 딸 수 있는 상추가 얼마 안 되니 되레 손해”라고 전했다. 올해는 일당이 8만원으로 오른다고 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농촌에서도 일당이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일손이 부족한 걸 넘어 구하기 어렵다 보니 주변에서 비닐하우스를 하다 아예 농사를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최씨가 ‘논산시 1호 계절근로자 도입 농가’에 이름을 올린 것도 일손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방편이었다. 계절근로자는 최씨 부부와 같은 결혼 이민자가 외국인 가족을 고용하거나, 지방자치단체가 법무부에 신청해 배정받은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농·어업 분야의 일손 부족을 덜기 위해 2015년 도입됐다. 이 제도를 통해 응우엔씨의 두 오빠와 올케 등 3명이 한국으로 왔다.
하지만 만족도가 떨어진다. 이들이 한국에 거주할 수 있는 기한이 1년에 3개월로 한정돼 있어서다. 법무부는 농번기 일손 부족을 돕는다는 취지에 맞춰 단기취업 비자(C-4)만 발급해준다. 1년 내내 재배 가능한 비닐하우스 농가의 실정과 맞지 않는 셈이다. 최씨는 “3개월 일을 도와주다 베트남으로 돌아가면 우리 부부만 남아 더 힘들어진다”며 “누가 이렇게 제도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최씨는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고용허가제에도 눈을 돌려봤다고 한다. 최대 4년10개월까지 국내 체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계절근로자보다 활용도가 높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고용부에 문의해 받은 답은 “가족은 고용할 수 없다”였다. 사실 가족을 고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용허가제 절차를 따져보면 최씨가 자기 가족을 고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고용허가제는 고용부가 외국인 근로자를 필요로 하는 업종에 ‘무작위’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용주가 자기 가족을 콕 집어서 고용하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설명했다.
최씨 부부의 볼멘소리는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농촌 전체에 만연한 불만이다. 한국이민학회의 ‘외국인 단기 근로자 제도 실태분석 및 종합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는 현장과 현실의 괴리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보고서는 농·어업 분야의 계절근로자 수요를 지난해 기준 2만2575명으로 추산했다. 법무부가 올해 허용한 계절근로자는 2597명이다. 실수요의 11.5%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최씨는 “대부분 농가가 불법체류자라도 고용하지 않으면 농사를 아예 지을 수 없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논산=글·사진 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