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모(16)양은 지난달 한 아이돌 그룹의 ‘굿즈’(연예인 관련 제품)를 구입하기 위해 SNS에서 ‘대리입금’해줄 사람을 찾았다. 온라인에서 만난 A씨에게 “아이돌 굿즈 구입 대금 10만원을 대신 입금해주면 1주일 안에 수고비 포함 15만원으로 갚겠다”고 약속을 했고 며칠 뒤 집으로 아이돌 굿즈가 배달됐다. 강양은 A씨의 돈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대리입금자를 찾았다.
최근 온라인에서 10대를 중심으로 ‘대리입금’이 유행하고 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 이들에게 1만~30만원을 빌려주고 수고비를 받는 행위를 말한다. ‘대리입금 가능하다’는 글이 SNS에 게재되면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 댓글(사진)등으로 신청한다. 원금과 함께 제일 많은 수고비(이자)를 갚겠다고 말한 사람에게 먼저 대리입금이 된다.
대리입금은 적은 돈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10대가 주로 사용한다. 급전이 필요한 이유는 아이돌 팬클럽 굿즈 주문, 게임 아이템 구입, 빌린 돈 상환 등 다양하다.
문제는 빌린 돈 대비 수고비, 즉 이자율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대리입금을 해주는 사람이나 구하는 사람이 내건 수고비를 보면 이자가 대부분 원금의 50% 이상이다. 대리입금 원금 자체가 소액이다 보니 이자율이 높아도 이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만원짜리 피규어를 사기 위해 대리입금을 사용한 김모(18)군은 “급한 마음에 수고비 13만원을 주겠다고 하고 빌렸는데 갚을 날이 되니 수고비를 너무 많이 부른 게 후회가 됐다”면서도 “당장 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요즘도 대리입금을 찾는다”고 말했다.
더 큰 부작용은 불법 고금리 대부업자들이 손을 뻗치며 대리입금이 사채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제주도에 사는 B군(17)은 지난해 9월 ‘1주일 안에만 갚으면 원금 20만원에 10만원만 더 갚으면 된다’는 대부업체의 SNS 광고를 보고 덜컥 돈을 빌렸다.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해당 업체는 현금 지급 대신 콘서트 티켓 비용을 대신 입금해줬다. 하지만 업체는 B군에게 이자만 16만원을 요구했고 이를 갚지 못하자 부모에게 전화해 빚을 독촉했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업체는 B군을 포함해 고등학생 29명에게 816만원을 빌려주고 이자로만 300만원을 받아 챙겼다.
경찰청은 이달 대리입금 집중 단속에 나선다. 각 학교와 협력해 피해 집중신고기간을 운영하고 SNS상 조직적 광고·대출 행위와 실제 ‘전주(錢主)’의 존재 여부도 수사할 계획이다. 대리입금을 홍보하는 불법 콘텐츠와 광고물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삭제 요청하고, 불법광고에 사용된 전화번호도 관련 부처에 정지요청을 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부모 동의 없이 이뤄진 대리입금은 민사상 취소할 수 있고 이 경우 수고비(이자) 없이 원금만 돌려주면 된다”며 “대리입금 행위는 형사처벌될 수 있으니 대리입금을 해주거나 이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