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4일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동해상에 발사하면서 교착 국면에 빠진 북·미 비핵화 협상 판을 흔들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열병식때 공개했던 ‘북한판 이스칸데르’를 발사한 것으로 분석됐다.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5형’을 발사한 후 18개월 만의 무력시위다.
이번 도발을 통해 북한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에 ‘양보는 없다’는 압박 수위를 한층 더 높인 모양새다. 다만 미국을 사거리에 두지 않은 전술유도무기를 발사하며 비핵화 대화 여지는 남겼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4일 오전 9시6분쯤부터 오전 10시를 넘긴 시점까지 강원도 원산 호도반도 일대에서 북동쪽으로 단거리 발사체를 여러 발 발사했다. 이날은 공교롭게 취임 2주년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이 군 지휘부에 9·19 군사합의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지시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국방부는 5일 “북한은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포함해 240㎜, 300㎜ 방사포를 다수 발사했다. 사거리는 70~240여㎞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미는 단거리 발사체 관련 세부 탄종과 제원을 공동으로 분석 중”이라고 덧붙였다.
군사 전문가들은 4일 오전 10시 이후 발사된 것으로 알려진 전술유도무기에 대해 러시아제 이스칸데르를 개량한 지대지 탄도미사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무기는 지난해 북한이 건군 70주년을 기념한 2·8 열병식 때 공개했던 것과 유사하다. 고체연료를 쓰는 사거리 300㎞ 이상의 미사일로 추정된다. 군사분계선(MDL) 인근에서 발사할 경우 남측 전역을 때릴 수 있는 전력이다. 엔진 추진체를 탑재한 이 무기는 비행궤도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비교적 낮은 고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패트리엇(PAC-3) 미사일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로 요격하기 어려운 무기체계로 분석된다.
북한이 중장거리 미사일이 아닌 전술유도무기 발사를 선택한 것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제재 해제 문턱을 높인 미국에 ‘양보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오는 9~10일 방한하는 점을 감안해 더 큰 선물을 들고 오라는 뜻을 내비친 것일 수도 있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올해 말까지를 협상시한으로 제시하며 미국 측에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해 왔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완전히 중지하지 않았으니 북한도 군사적 액션을 취하며 맞대응할 수 있다는 ‘새로운 길’을 암시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북한이 향후 미국 측 반응을 살펴보며 군사 도발 수위를 높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번 타격훈련을 참관하며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진정한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고 담보된다는 철리를 명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이 5일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강경 대응을 자제하고 유화적인 메시지를 내놓았다. 그는 발사 13시간 뒤 트위터 글에서 “김정은은 내가 그와 함께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나와의 약속을 깨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합의는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세상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만 김정은은 북한의 엄청난 경제적 잠재력을 알고 있으며 그 잠재력을 방해하거나 끝내버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미 협상의 틀을 유지하면서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김경택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