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놓고 ‘대결 정치’가 이어지면서 경제 살리기는 실종됐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 등 ‘골든타임’을 다투는 경제정책들이 국회에서 논의조차 없이 마냥 밀리고 있다. 경기 활성화라는 분초를 다투는 과제를 받아든 정부 경제팀은 애만 태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추경이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는 추경을 편성·집행하면 올해 경제성장률을 0.1% 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고 추산한다. 관건은 시간이다. 단기 사업을 위주로 편성했기 때문에 집행 시기가 빠를수록 거둘 수 있는 효과가 크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월 통과 필요성’을 수차례 강조한 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추경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여야 대치국면에서 자유한국당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당은 올해 추경안을 정부·여당의 ‘총선용 추경’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당 내부에서는 추경안을 둘로 쪼개서 분리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올해 추경안은 크게 보면 ‘미세먼지 대응 등 국민안전(2조2000억원)’ 부문과 ‘선제적 경기 대응 및 민생경제 긴급지원(4조5000억원)’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이렇게 둘로 나눈 뒤 미세먼지 대응 등 국민안전 관련 추경만 통과시키자는 것이다. 경제정책 방향을 수정하지 않은 채 경기 대응을 이유로 나랏돈을 더 풀어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한국당의 입장이다.
정부는 곤혹스러워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5일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해 하나의 패키지로 올라간 추경안을 둘로 쪼개기도 불가능할뿐더러 추경안을 그렇게 처리한 전례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늦어도 이달 말까지 추경안을 통과시켜주길 기대하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이 이달 말이다. 이 시기를 넘기면 예결위를 다시 구성해야 한다. 추가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추경안 처리 시점이 6~7월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추경 집행 효과’도 반감된다. 정부 안팎에서는 추경안에 포항 지진복구 사업 등 한국당의 지역구 사업이 포함돼 있어 한국당이 추경 논의·의결을 무한정 미루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한다.
국회의 대치 정국 때문에 표류하는 정책은 비단 추경뿐만이 아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법안은 지난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합의가 불발된 뒤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6개월 확대안’에 ‘1년 확대안’으로 맞서고 있다. 주52시간 근로제 적용에 따른 계도기간이 지난 3월 말로 끝난 상황이라 산업현장의 기업들 혼란만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정부가 제시한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은 사실상 올해 적용하기 어려워졌다.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해 시장이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인상을 막는 게 골자다. 정부 관계자는 “구간설정위와 결정위를 새로 구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 내년도 최저임금을 고시해야 할 시점을 종합 고려하면 늦어도 이달 초까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며 “올해 개편안을 적용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