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만들어주신 생명의 첫 공동체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 사랑을 깨닫기 원하신다. 가슴으로 낳은 자녀들을 위해 20여년간 한국을 오가며 수집한 자료로 책을 만든 ‘벽안의 엄마들’이 있다.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동방사회복지회에서 만난 조앤 수왈스키(75)와 데비 켄트(68)의 손엔 책 두 권이 들려 있었다. 30여년 전 이 기관을 통해 자녀를 입양하면서 서로 알게 된 미국인 엄마들이다. 자랑스러운 한국문화를 알려주기 위해 직접 쓰고 만든 ‘나쁜 녀석은 물어버리겠다(I BITE THE BAD GUYS)’ 등 책 두 권을 동방사회복지회에 헌정했다.
난임 부부였던 조앤은 1983년과 86년 남녀 아이 두 명을, 데비는 86년과 94년 여자아이 두 명을 생후 3~6개월 때 입양했다. 두 사람은 입양 관련 모임에서 만나 친구가 됐다.
“첫아이를 낳고 둘째가 생기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계획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친아들 친구 중에 ‘조이’라는 아이를 알게 됐는데 유난히 사랑스러운 아이였어요. 알고 보니 입양아였죠. ‘조이’를 보면서 ‘엄마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내가 엄마가 되는 건 어떨까?’ 생각하고 입양을 결심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예정해주신 두 명의 딸을 입양했습니다. 작은 딸 이름을 ‘조이’라고 지었습니다.”
데비는 입양한 자녀들을 키우며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체험했다고 고백했다. “자녀를 통해 얻는 기쁨은 하나님이 주신 큰 축복입니다. 입양은 희생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자녀를 양육하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선 공통되게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설 무렵”이라고 답했다. 조앤은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으며 상실감에 빠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이어 “생각은 미국인이지만 양부모와 다른 외형적인 모습에 아이들은 ‘한국은 어떤 곳이며,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친부모가 누구인지, 왜 자신을 버렸는지 궁금해했다”고 당시 막막한 심정을 전했다.
데비는 “입양 전까지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다”며 “아이들을 위해 한국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책도 읽어주고 싶었지만 미국에서 그런 책을 찾기란 어려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자녀들과 함께 동방사회복지회가 주최한 ‘모국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한인 입양인들과 가족들이 한국을 방문해 역사를 배우고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데비는 “한국 방문을 계기로 ‘우리가 직접 책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며 “무엇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아름다운 한국을 아이들이 자랑스럽게 여기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했다.
두 엄마는 책을 만들기 위해 한국을 오가며 역사와 문화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다. 2014년 ‘함에 담긴 골무 100개 - 한국 수공예의 얼과 아름다움’이라는 첫 영문 책을 펴냈다. 도자기 섬유 한지 목공예 금속공예 상감 회화 7개 분야의 44가지 한국전통 공예품을 자세히 소개한 책이다.
이들의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입양한 자녀뿐 아니라 미국 어린이들도 한국의 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창작 전래동화책을 기획했다. 이를 위해 4년 동안 한국 전래동화를 열심히 읽고 재구성했다. 데비의 대학 동창이자 동화작가인 메리조 글러브(68)가 이야기 구성에 힘을 보탰다.
메리조는 “한국 전래동화책에는 구수한 단어들이 있지만 이것을 영어로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한국문화를 잘 모르는 아이들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새롭게 이야기를 구성해 한국문화를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지난 1월 세 사람은 공동저자로 ‘나쁜 녀석은 물어버리겠다’를 펴냈다. 한국동화책에 자주 등장하는 호랑이가 마을의 수호신으로 친구들을 지켜낸다는 이야기다. 아마존닷컴과 서점 등을 통해 미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다.
책에는 호랑이와 까치, 도깨비 등이 등장한다. 가구나 음식 등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설명은 삽화로 섬세하게 표현했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책에 잘 녹여내기 위해 한국인 삽화작가 이웅기씨도 섭외했다.
“스토리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해 삽화 표현에 많은 시간을 들였어요. 영어 원고를 써서 한국인 친구가 한국어로 번역해 삽화작가에게 전달하면 다시 삽화를 그려 저희에게 보내 확인하고 재수정하는 절차를 계속 반복했지요. 한국적인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이 작업이 가장 힘들었습니다.”(메리조)
조앤과 데비는 해마다 미국 워싱턴DC 인근에서 열리는 한국 어린이용품 판매 행사에도 참여한다. 입양인 가족과 미국 어린이들에게 책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 아이를 입양한 가족들이 가장 기뻐했습니다. 책을 통해 아이들이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느끼고 경험하는 모습을 보며 부모들이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더 다양한 시리즈로 책이 나오길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시리즈물로 제작하려고 계획 중입니다.”(메리조)
엄마들이 책 두 권을 내는 동안 자녀들은 어느덧 30대 성인이 됐다. 요리사로 회사원 등으로 바르게 자랐다며 자랑했다.
조앤은 “건강한 사회인으로 책임을 다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한국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로서 이 일들을 시작하길 잘했단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데비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아이들을 입양했고 그 사랑이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것 같다”며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활짝 웃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