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10시쯤 판문점 북측 판문각에서 나온 북한 경비병력 3명이 빠른 걸음으로 군사분계선(MDL)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얼룩무늬 전투복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북한군은 불과 10m 남짓한 거리에 있던 남측 관람객들을 잠시 응시했다. 3명 중 한 명은 남측을 향해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남측 관람객은 손에 땀을 쥐기는커녕 북한군을 향해 스마트폰 카메라 버튼을 눌러댔다.
이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측 지역 견학이 7개월 만에 재개됐다. JSA는 북한군 병사 오청성씨가 1년6개월여 전에 AK-47 소총에서 불을 뿜은 탄환을 뚫고 남측으로 내달려 귀순했던 곳이다. 그의 귀순 이후 한층 고조됐던 긴장감은 눈에 띄게 사라진 상태였다. 군 관계자는 “오청성씨 귀순 당시 자유의집 근처에 생긴 탄흔은 그대로 남아 있다”면서도 “남북 경비병력 모두 언제 빼들지 모르는 권총을 차고 있다는 위협감은 이제 느끼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군은 권총 대신 왼쪽 팔에 ‘민사경찰’이라고 쓴 노란색 완장을 차고 있었다. 숀 모로 JSA 경비대대장(미 육군 중령)은 내외신 기자 70여명에게 “판문점에 평화의 기운이 있다”며 “(북측) 카운터파트를 만나 아침 인사도 할 수 있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그는 9·19 군사합의를 통해 지난해 10월 이뤄진 화기 철수와 초소 폐쇄, 지뢰 제거 등 JSA 비무장 상황을 설명했다. 이때 또 북한군 3명이 일렬종대로 MDL 근처까지 잠시 접근했지만 위협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지는 않았다.
평온했던 JSA 북측 지역은 오전 11시쯤 100명 넘는 관람객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떠들썩해졌다. 일부는 남측을 향해 환호성을 지르거나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한 여성이 확성기를 통해 중국어로 안내하고 있었다. 남측은 JSA 비무장화 조치가 시작된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 30일까지 견학을 중단했지만 북측은 계속 견학을 허용해 왔다고 한다. 모로 중령은 “많게는 한 주에 900여명이 JSA 북측 지역을 견학한다”고 설명했다.
새로 문을 연 JSA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도보다리였다. 이 다리는 정전협정 직후 중립국감독위원회 소속 인원들의 이동을 위해 습지 위에 만든 것이었다. 지난해 4·27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나란히 서서 걸을 수 있도록 다리 폭이 확장됐다. 직선으로 뻗어 있던 다리에 ‘T’자로 꺾이는 구간과 벤치도 마련됐다.
다만 관람객들은 두 정상이 30분간 수행원 없이 대화했던 이 벤치에 앉을 수 없다. ‘T’자로 꺾이는 구간 앞에까지만 갈 수 있다. 이 다리는 보강공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유엔군사령부는 지난 30일까지 안전점검 결과를 살펴봐야 한다면서 이곳 개방에 신중하게 접근했다. 두 정상이 마주 앉았던 벤치에는 하늘색 덮개가 씌워져 있었다. 당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함께 삽으로 흙을 떠 심었던 소나무도 새로운 안보관광 대상이 됐다.
아직 JSA 비무장화는 진행 중이다. 기존 JSA 초소를 폐쇄하고 공동근무를 위해 새로 만든 초소는 비어 있었다. 남과 북, 유엔사가 JSA 공동근무 및 운영규칙에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9·19 군사합의에 명시된 JSA 남북 지역 자유왕래 방안은 이행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이번에 새로 제작된 JSA 투어 영상은 ‘다시 평화를 꿈꾸는 곳, JSA’라는 문구로 끝을 맺었다.
판문점=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