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의 교육부 찔러보기… 혼란은 수험생 몫

입력 2019-05-02 04:08

고려대가 지난 2년간 치열하게 전개됐고 아직도 불씨가 꺼지지 않은 수시·정시 비율 논쟁을 머쓱하게 만든 수단은 ‘위주’ 두 글자였다. 그리고 다양한 ‘숫자놀음’으로 정부 정책이 현장에서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 보여줬다. 교육부 대입 담당자들도 황당해 했으니 수험생들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고려대의 2021학년도(현재 고교 2학년 대상) 대입전형 시행계획 얘기다. 역시 악마는 언제나 디테일에 숨어 있다.

지난 30일 나온 고려대의 2021학년도 대입 계획은 교육부를 한번 ‘쿡’ 찔러본 것이다. 고려대는 2020학년도 9.6%인 학생부교과전형을 2021학년도에 27.8%로 끌어올렸다. 교육부는 공론화를 거쳐 ‘정시 30%룰’을 만들었다. 2022학년도부터 수능 위주로 신입생 30% 이상을 뽑으란 내용이다. 다만 지방대 사정을 고려해 학생부교과전형이 30% 이상인 대학은 예외로 했다.

여기서 ‘위주’란 단어의 함정이 작용한다. 수시모집은 학생부 위주 전형이 주류인데 종합과 교과로 나뉜다. 여기서 종합은 흔히 말하는 학종이다. 교과는 내신성적을 보는 학생부교과전형이다. 위주란 말을 쓰고 싶으면 해당 전형요소를 50% 이상 반영하면 된다.

고려대 학생부교과전형은 내신성적 60%에 서류평가 20%, 면접 20%다. 지원자 대부분이 1등급대인 점을 고려하면 서류와 면접에서 당락이 갈린다. 수능 최저기준도 높아서 수험생들에게 학종보다 가혹할 수 있다. 고려대처럼 타이틀은 교과인데 실제 변별은 다른 전형요소로 하게 두면 올바른 대입제도를 위한 사회적 논의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

고려대는 수능 위주 전형도 16.2%에서 18.4%로 높였다. 고려대가 제시한 ‘27.8’과 ‘18.4’는 여러 해석을 낳는다. 그중에서 교육부에 이렇게 물었다는 해석이 솔깃하다. ‘수능 말고 내신 위주로 뽑아도 될까. 안 된다면 내년엔 수능 위주 전형을 10% 포인트 더 뽑겠다.’ 내신 30%로 못 박지 않고 27.8이란 애매한 숫자로 간을 봤으며, 허용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수능 비중도 슬쩍 올려놨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불가 방침을 내놓자 고려대는 2022학년도에는 수능 30%를 따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시에서 학생을 적게 뽑고 싶은 마음 이해한다. 우수 학생 선점이 학교 입장에선 당연한 전략일 게다. ‘수능 문제 한두 문제만 맞혔어도’란 생각에 학교생활이 손에 잡히지 않고, 모교에 애정이 부족한 학생이 많아지는 것도 마뜩찮을 수 있다. 정부와 머리싸움도, 경쟁 대학과 눈치싸움도 좋다. 그렇더라도 ‘게임의 룰’을 가지고 이리저리 장난치는 건 고려대를 바라보는 수험생들에게 좀 미안하지 않은가.

이도경 사회부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