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원 서울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모(30)씨에게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찰은 “조울증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이 이뤄졌다”면서도 “계획적이고 잔혹한 범행 수법을 감안해 달라”고 구형 의견을 밝혔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정신질환자들의 강력범죄에 대한 심신미약 감경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재판부가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정계선) 심리로 박씨의 첫 공판이자 결심 공판이 1일 진행됐다. 박씨는 이날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구인장을 발부했지만 구치소에서 박씨가 강하게 거부하며 대치해 강제 인치(引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박씨 없이 재판을 진행했다.
박씨는 지난해 12월 서울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진료상담을 받던 중 미리 준비해둔 흉기로 임 교수를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씨는 수사기관에서 “정부와 병원 관계자들이 머리에 소형 폭탄을 심어 놨다”고 진술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병원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주려는 의사를 처참하게 살해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회적으로 매우 중대한 사건이자 죄질 또한 지극히 불량하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박씨는 기소 단계에서부터 심신미약 범행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울증으로 치료를 받아왔고 입원 경력도 있던 박씨는 사건 당일 병원을 찾았다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최후변론에 나선 국선변호인도 “피고인(박씨)은 가정폭력과 학창시절 집단 괴롭힘에 노출됐고 군 생활 이후 회복할 수 없는 정신질환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심신미약에 이르게 된 경위는 피고인만의 죄는 아니다”며 심신미약 감경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고는 오는 17일 내려진다. 박씨의 심신미약이 인정될지, 인정된다 해도 감경 요소로 반영될지는 재판부에 달려 있다. 지난해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이후 법 개정으로 ‘심신미약 의무감경’이 폐지됐기 때문이다. 심신미약을 인정하더라도 법관의 재량에 따라 형을 감경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신미약은 우선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였다는 점이 증명돼야 한다. 심신미약이 쟁점이 됐던 대표적 사건들을 살펴보면 단순히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이 인정되지 않는다. 오패산 경찰관 살인사건, 수락산 등산객 살인사건, 인천초등생 살인사건, 어금니 아빠 살인사건 등이다. 이들에 대해 법원은 망상장애나 조현병 증세가 일부 인정되지만 범행 당시 심신미약의 상태까지는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인 김성민씨는 법원이 심신미약을 인정한 경우다. 김씨가 20년 가까이 조현병을 앓아온 점, 전문가들의 일치된 감정 결과 등이 판단 근거가 됐다. 법원은 그러면서 “형량을 정하는 데 있어 심신미약 상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무기징역 대신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범행 당시에 어떤 상태였느냐가 관건”이라며 “범행 무렵 환청이나 환시 증세를 심각하게 보인 상태라면 심신미약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증세를 판단하는 데는 피고인의 주장보다 객관적인 치료 내역이나 감정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고 덧붙였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