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 DMZ 평화의 길, 66년 만에 열린 금단의 길

입력 2019-05-01 18:10 수정 2019-05-01 19:13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전망대’에서 본 북한 모습. 금강산 제2봉 채하봉과 구선봉, 감호, 해금강의 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오른쪽 진청색 바다 옆 도로를 자세히 보면 색깔 차이로 남북의 경계를 파악할 수 있다.

4·27 남북정상회담 1주년인 지난 27일 강원도 고성군 ‘DMZ 평화의 길’이 열렸다. 파주·철원·고성 3개 구간 중 고성 구간이 일반에 처음으로 개방됐다. 분단 이후 민간인은 한 번도 걸은 적 없는 해안 철책 길이 66년 만에 국민 곁으로 다가왔다.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GP 철거 등 남북 간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지만 최전방 철책선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았다.

고성통일전망대 옆에 마련된 통문이 열리면서 전망대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금단의 땅으로 향한 발걸음이 시작됐다. 도보 구간인 A코스다. 목재데크로 된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면 가장 먼저 동해 북부선 철길과 통전터널이 있다. 이 철도는 1937년 일제강점기에 함경남도 안변에서 강원도 양양까지 수탈을 위해 지어졌으나 6·25전쟁 이후 50여년간 폐쇄됐다. 2000년대 들어 운행재개에 대한 남북간 협의에 따라 잠시 철도가 운행됐으나 2007년 5월 이후 멈춰서 있다.

DMZ 평화의 길 고성 구간 A코스를 걷고 있는 탐방객.

왼쪽에는 '지뢰'라는 팻말이 붙은 저지선을, 오른쪽에는 이중 철책을 둔 모랫길이 평탄하게 이어졌다. 철책 너머 바닷가 모래사장에는 발자국 하나 없이 파도만 흰 거품을 만들며 밀려왔다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추첨을 통해 A코스 방문객으로 최종 선정된 20명은 안내요원을 따라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삼삼오오 무리 지어 걸었다.

해안철책을 따라 걷다 대리석 표지석과 파란 칠로 표시된 남방한계선에 다다랐다. '귀하는 지금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가 관할하는 비무장지대(DMZ)로 진입하고 있다'는 안내판이 보였다. 남방한계선을 넘어 북쪽으로 더 걸어가자 이번에는 '지뢰' 주의 안내판 뒤로 처참하게 부서져 녹슨 채 나뒹굴고 있는 오래된 굴착기가 어리둥절하게 했다. 바로 앞 안내판이 의문점을 해결해줬다. 2003년 해안소초 전신주 작업 중 지뢰폭발 사고 때문이었다고 한다. 여름철 폭우 등으로 지뢰가 도보코스로 유입되는 걸 막기 위해 얕은 담이 최근 조성됐다. 그 너머로 아직 꽃을 피우지 않은 해당화가 지천이다. 5~7월이면 홍자색 꽃이 지뢰밭을 화려하게 수놓게 된다.

지뢰폭발로 부서져 녹슨 채 나뒹굴고 있는 굴착기.

전망대에서 봤을 때 중간에 오른쪽으로 툭 튀어나온 '송도'에 이르렀다. 개인소유라고 해설사가 설명해준다. 송도 인근에 소망 트리가 마련돼 있다. 한반도 모형의 철제 구조물 3개가 서로 이마를 맞댄 형태로 서 있고 가운데 종이 달려 있다. 트리에는 통일을 희망하는 다양한 소원이 내걸렸다.

이어 실질적인 DMZ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금강산 육로관광과 이산가족 상봉, 남북통행 등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금강통문이다. 사람과 차량이 모두 통과할 수 있는 크기로 평소에는 잠겨 있다고 한다. 2016년 4월 21일 조성된 휴전선 155마일의 최북단임을 알리는 기념비도 있다. 바로 옆 거리표지판에 눈길이 간다. 서울 166㎞, 평양 233㎞, 백두산 379㎞…. 솟대 조형물에는 '평화로 가는 길 이제 시작입니다'라는 글이 걸려 있다. 이곳에서 1.2㎞만 더 가면 군사분계선이다.

탐방은 통일전망대보다 2㎞가량 북측에 있는 '금강산 전망대'(717OP)에서 정점을 이뤘다. 1982년 만든 금강산 전망대는 한때 일반인 출입을 허용했으나, 1994년부터 군사시설로만 사용됐다. 전망대에 서자 금강산 주봉 능선과 '선녀와 나무꾼'의 배경으로 알려진 호수인 감호, 바위로 이뤄진 금강산 1만2000봉의 끝자락인 구선봉과 그곳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현종암, 복선암, 부처바위, 사공바위, 외추도 등의 해금강 작은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돌섬 형태의 구선봉은 아홉명의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곳이다. 감호의 폭은 800m, 둘레 3㎞로 봄부터 가을까지 북한군이 어패류 활동을 한다고 한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전날 내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금강산 제2봉인 채하봉(1588m)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최고봉인 비로봉(1638m)은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그 앞에 '369 감시초소(GP)'로 불리던 '보존GP'가 우뚝하고 오른쪽에 지난해 11월 폭파 철거된 북한측 GP 자리가 공터로 남아 있다. 북한측 높은 봉우리에는 '덕무현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1991년 김일성 주석, 1996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2014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차례로 방문해 북한군의 방사포 사격을 지휘했던 곳이다.

남북으로 이어진 도로와 가로등은 남측과 북측의 색이 다르다. 그 만나는 지점이 군사분계선이다. 도로 변에 작은 말뚝이 박혀 있다. 군사분계선은 1292개의 말뚝으로 이어진다. 군사분계선 직전에 녹색 표지판이 안내하고 파란색 금강산 이정표가 서 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으로 조금 더 시선을 돌리면 감호 앞에 붉은 깃발을 내건 북한 인민군 초소가 있다.


여행메모

2.7㎞ 도보이동 포함 7.9㎞ A코스 인기
출입신고소에서 입장료 납부한 뒤 방문


‘DMZ 평화의 길’ 고성 구간은 통일전망대에서 해안 철책을 따라 금강통문까지 2.7㎞를 도보로 이동한 뒤 차량으로 금강산 전망대에 이르는 A코스와 통일전망대에서 금강산 전망대까지 차량으로 왕복 이동하는 B코스로 이뤄져 있다. A코스는 모두 7.9㎞, B코스는 7.2㎞다. A코스는 약 2시간30분 소요된다. 금강산 전망대에서 통일전망대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한다.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6일간 하루 2번씩 운영된다. 한번에 A코스는 20명, B코스는 80명이 참여할 수 있다. 인터넷 두루누비 사이트(www.durunubi.kr/dmz-travel.do)에서 신청하면 된다. 지난 27일부터 오는 7일까지의 A코스는 16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였다.

관광객들이 통일전망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민간인통제구역 남쪽인 출입신고소에서 출입신고 및 입장료를 납부한 뒤 제진검문소를 경유해야 한다.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고성=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