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국회’라는 오명까지 써가며 여야 4당이 강행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은 취지대로 민의(民意)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까. 지역구 국회의원을 253명에서 225명으로 줄이고,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47명에서 75명으로 늘려 비례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선거제도 개편안은 공천제도의 공정함이 필수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밀실 공천’ ‘사천(私薦)’이 횡행하는 국내 정치 현실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국회 입법조사처 학술지에 게재된 연구 논문에서도 개혁적이고 전문성을 갖춘 신진 인물의 정치 진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입법조사처가 지난 30일 발행한 ‘입법과 정책’에 등재된 연구 논문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이 실렸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김한나 연구원과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박현석 조교수가 쓴 ‘연동형 비례제와 정당 민주화: 독일과 뉴질랜드 주요 정당의 공천제도 비교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다.
논문은 당내 민주주의가 성숙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과 뉴질랜드 정당에서조차 연동형 비례대표제 하에서 일부 엘리트들이 공천을 좌우해 신진 인사의 정치 진출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조직 동원력을 갖춘 지역의 정당 엘리트와 현직 의원들이 더 공고하게 당내 권력을 쥘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논문은 그러면서 “한국 주요 정당들의 국회의원 공천 과정은 대부분 중앙당에 의해 주도되는 만큼 지역적으로 볼 때는 중앙으로 집중돼 있으며, 선정 주체의 측면에서는 당의 최고지도자가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배타적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이런 조건 속에서는 개혁적이고 전문성을 갖춘 신진 인물의 정치 진출은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공천 등을 할 때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를 보장하는 내용이 일부 담겼지만 구체적 사항은 각 당의 당헌·당규에 따르도록 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해 온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간사는 “세세한 내용을 모두 법에 정해놓으면 정당 활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어 심사 과정이나 투표 방식은 정당이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심 의원도 언론 인터뷰에서 “비례대표를 밀실에서 사천하는 정당에는 유권자들이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결국 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당내 민주주의가 성숙돼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밀실 공천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이 있지만 (공천을 위한) 선거인단 구성을 어떻게 공정하게 할지에 대한 과제는 여전히 남는다”며 “가령 특정한 계파에 유리한 선거인단이라는 불만이 나올 수 있는데, 이런 시비를 차단할 공정한 방식이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