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패스트트랙 수사권 조정안, 민주주의 원리 위배”

입력 2019-05-01 19:24 수정 2019-05-01 23:43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3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문무일 검찰총장이 1일 “국회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 법률안들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29일 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등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것에 대해 검찰 수장으로서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검찰이 최대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문 총장은 이날 “현재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형사사법제도 논의를 지켜보면서 검찰총장으로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회의를 열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법률안 중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을 문제삼은 것이다.

문 총장은 여야 4당이 합의해 지정한 법안임에도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비판했다. 특히 “특정한 기관에 통제받지 않는 1차 수사권과 국가정보권이 결합된 독점적 권능을 부여하고 있다”며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에 대해 강한 우려를 드러냈다. 검찰총장으로서 검찰의 기능 축소와 맞물려 ‘경찰의 비대화’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의 핵심은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이 1차 수사권과 종결권을 갖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합의안의 골자다. 여기에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경찰 신문조서 수준으로 낮추는 내용 등이 추가됐다. 법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검찰 권한은 필연적으로 줄어들고 경찰의 수사 재량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검찰은 그동안 실효적 자치경찰제 도입과 정보경찰 업무의 경찰 분리 등을 검경 수사권 조정의 전제로 주장해 왔다.

문 총장이 해외 순방 중임에도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은 ‘검찰의 위기감’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임기를 채 석 달도 남겨두지 않았지만 문 총장이 이른바 ‘마지막 과업’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국회에서 이어질 패스트트랙 절차에 검찰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것이다.

국회의 패스트트랙 지정 직후 검경 수사권 조정 실무를 담당하는 김웅 대검 미래기획단장은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 “검찰 가족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 ‘뒤숭숭한’ 검찰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한 검사장은 “국회가 패스트트랙을 지정한 것은 (검경 수사권 조정의) 논의를 본격화하는 것”이라며 “경찰이 1차적 수사권을 갖게 됐을 때 견제와 균형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국민들의 일상에 매우 밀접한 형사사법절차에 대해 국회가 지속적으로 논의해 달라는 취지”라고 분석했다.

문 총장의 입장 발표에 대해 청와대는 “공식 입장이 없다”고 밝혔지만 내부에서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논의 중인 안건을 행정기관장이 비판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향후 검찰 측도 의견을 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을 것”이라며 “청와대와 여권이 합심해 추진하는 사안인데 문 총장의 발언이 당황스럽기는 하다”고 했다.

안대용 박세환 기자 dan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