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에 두 대통령이 등장하며 촉발된 베네수엘라 사태가 중대 국면을 맞았다.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자신을 지지하는 군인들을 향해 봉기하라고 촉구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과이도 의장 측을 ‘쿠데타’ 세력이라고 비난하며 이들을 진압했다고 주장했다.
거리에선 반정부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고 마두로 정권 핵심 간부가 과이도 의장 지지를 선언하는 등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과이도 의장을 지지하는 미국과 마두로 대통령 편을 드는 러시아가 이번 사태를 두고 장외 설전을 벌였다. 과이도를 지지하는 군부 내부의 대규모 봉기 조짐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과이도 의장은 30일 새벽(현지시간)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3분 분량의 동영상에서 “마두로 대통령은 군대의 지지를 잃었다”면서 “‘자유 작전’의 최종 단계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트위터에 “군대가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며 “베네수엘라 국민의 뜻과 헌법에 따라 그들은 역사적으로 옳은 편에 섰다”고 밝혔다.
과이도 의장이 군사 봉기를 선언한 것은 사태 발생 이후 처음이다. 마두로 대통령과 과이도 의장은 지난 수개월간 군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해 왔다. 과이도 의장은 동영상에서 무장병력 수십명과 장갑차를 배경에 세워 자신이 군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과시했다. 동영상에는 과이도 의장의 정치적 스승이자 마두로 정권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한 레오폴도 로페스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로페스는 과이도 의장을 따르는 군인들이 자신을 풀어줬다고 밝혔다.
영상 공개 직후 마두로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경찰은 진압용 고무총탄을 발사하는 등 충돌하면서 부상자가 100명 넘게 발생했다. 경찰 장갑차 2대가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마두로 대통령 측 역시 지지자들에게 거리로 나와 ‘맞불 시위’를 하라고 촉구하면서 카라카스 시내에는 대혼란이 빚어졌다.
미국은 과이도 의장 지원사격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트위터에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민과 그들의 자유를 위해 함께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하는 쿠바를 겨냥해선 “쿠바군과 민병대가 베네수엘라에서 군사행동을 즉각 중단하지 않으면 전면적인 해상 봉쇄와 고강도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며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적 개입 가능성을 재차 밝혔다.
미국은 마두로 대통령의 쿠바 망명설까지 제기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CNN방송 인터뷰에서 “마두로 대통령이 이날 오전 비행기를 타고 쿠바로 떠나려 했지만 러시아가 만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러시아 외교부는 대변인 명의 성명을 CNN에 보내 “미국이 베네수엘라 군대를 와해하려고 가짜 정보를 활용한 정보전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마두로 정권 핵심 인사의 이탈도 나타났다. 베네수엘라 정보기관인 ‘볼리바르 국가정보원(SEBIN)’ 수장 마누엘 피게라는 마두로 대통령 지지를 철회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보냈다고 워싱턴포스트(WP)와 AP통신이 보도했다. 피게라는 이 서한에서 “나는 항상 마두로 대통령에게 충성을 바쳤지만 지금은 국가를 재건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정작 군부 내부에서는 뚜렷한 봉기 동향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날 저녁 국영TV 연설에서 “과이도 의장 측이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과이도 의장에게 동조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군인 20여명은 브라질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다. 이들 중 고위장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가택연금에서 구출된 로페스 역시 스페인대사관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과이도 의장은 1일 시민과 군부가 참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예고한 상태여서 혼란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된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