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을 지배한 부끄러운 원체험을 1인칭으로 서술

입력 2019-05-04 04:03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79)가 한 말이다. 에르노는 이 말대로 평생 자신의 경험을 가공이나 은유가 없는 간결한 문체로 기록해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이룩했다. 그의 소설은 개인이 체험한 감정, 관계, 사회를 예리한 감각으로 관찰하고 표현하는 것 자체에 천착한다.

‘부끄러움’은 자기 삶을 지배한 부끄러운 원체험에 대한 소설이다. 첫 문장은 이렇다.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나’가 열두 살이던 1952년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일어난 일을 목격하는 장면이다. 아버지 손에는 낫이 들려 있었다. 기억나는 건 울음소리와 비명뿐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이 일을 발설하지 못했다. 훗날 사랑했던 몇몇 남자들에게 얘기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 일은 “불행을 번” 일로 남아 유년의 기억을 지배했다. 에르노의 회상은 철저하게 객관적이다. 그날 전후 찍은 사진들,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 겸 식료품점, 자신이 다닌 사립학교를 묘사한다.

나는 가난한 부모와 고급 사립학교 사이의 사회적 간극을 체험하고 존재의 불안을 느낀다. 학교에는 부유한 집안의 자녀들이 주로 다닌다. 학교 축제 후 교사와 친구들이 나를 집에 데려다준다. 이때 어머니는 아무렇게나 풀어헤쳐진 얼룩덜룩한 셔츠 아래로 알몸뚱이를 내보인다. 나는 사립학교 세계의 시선으로 어머니를 마주하고 주체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 뒤 여름 내내 있었던 모든 일들은 우리의 천박함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단체 여행에서 또래에게 초라한 옷차림에 대해 지적을 받고 고급 식당에서는 추레한 아버지와 함께 서빙에서 소외된다. 에르노는 윤색이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1인칭 시점으로 부끄러움의 첫 기억들을 세밀하게 서술한다.

소상인 부부의 딸로 태어나 루앙대를 졸업한 그는 교사를 거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1974년 등단해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등을 수상했다.

2011년 선집이 생존 작가로는 처음으로 권위 있는 문학 시리즈 ‘갈리마르 총서’로 나왔다. ‘세월’로 올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로 오른 상태다.

강주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