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 챕터에 각각 붙은 제목 몇 개만 일별해도 책에 담긴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긍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진심은 통하지 않는다’ ‘칭찬은 고래의 인생을 망친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이렇듯 자극적인 문구 옆에는 저마다 ‘○○의 배신’이라는 말머리가 달려 있다. ‘○○’에 들어가는 낱말은 ‘사랑’ ‘믿음’ ‘결혼’ ‘보상’처럼 아름다운 가치를 띤 단어들이다. 아울러 표지에는 ‘진심, 긍정, 노력이 내 삶을 배신한다’는 부제까지 붙어 있다.
이 정도면 온갖 세상의 통설을 결딴내겠노라 달려드는 저자의 결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책이 세상에 널렸다는 거다. 당장 서점에 가보면 우리는 비슷한 주장을 통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책들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하지만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 걸 그랬습니다’를 그렇고 그런, 진부한 교양서라고 깎아내려선 안 될 듯하다. 이 책엔 독자의 눈길을 끌어당기는 내용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귀가 솔깃해지는 갖가지 심리학 실험 사례가 한가득 실려 있다. 전하려는 메시지를 간명하게 드러내는 저자의 필력 역시 인상적이다. 얼마간 진부하게 여겨지는 내용이 적지 않지만, 이런 부분이 크게 거슬리진 않는다. 누구든 책을 펼치면 속절없이 책장을 넘기게 될 것이다.
책을 펴낸 김영훈(48)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다. 과거 그는 미국 일리노이대에 유학하면서 ‘칭찬과 긍정적 사고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배신하는가’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젊은 시절부터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기질이 충만했던 셈이다.
그는 25년간 사회심리학을 연구하면서 두 가지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첫째는 사람들이 저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한다는 거다. 그는 책의 첫머리에 “나는 이 책에서 이 두 가지 동기가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고 적어두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자 하는 건 인간의 본능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간혹 손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그 누구도 당신의 열정과 배려와 양보를 알아차릴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가 아내와 ‘부부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들었던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연단에 오른 부부 상담 전문가는 청중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혼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남편들이 아내에게 갖는 공통적인 불만이 세 가지 있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있을까요.”
청중은 엉뚱한 답변을 쏟아냈는데, 정답부터 말하자면 첫째는 밥, 둘째는 잠자리, 셋째는 집안 청소다. 상담 전문가가 답안을 제시하면 여성들은 깜짝 놀란다. 남편들로 하여금 이혼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 게 저따위 “생물학적인 욕구”라는 게 어처구니없어서다.
그러나 남성들의 반응은 다르다. 많은 남성 청중은 “숨겨온 자신만의 불만을 다른 남편들도 공감한다는 사실”에 열광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걸까. 이유는 남성과 여성의 결혼관이 달라서다. 남녀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사랑을 느끼는 포인트도 다르다. 책에 담긴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남편은 왕이 되고 싶고, 아내는 충성스러운 신하를 찾는다.” 결국 원만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려면 흉금을 터놓아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진심은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저자는 그래서 거듭 단언한다. 진심은 통하지 않는다고. 직장에서 인정받고 싶은가. “묵묵히 일하면 할수록 당신이 배신당할 확률은 더욱더 높아진다.” 이성으로부터 마음을 얻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다. 구애가 성공하려면 고백부터 해야 한다. “심리학의 천기누설 중 하나는 사람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살핀 대목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원숭이를 상대로 벌인 실험을 소개하는데 간추리자면 이런 내용이다.
원숭이 다섯 마리를 한 우리에 넣는다. 편의상 이들 원숭이를 ①~⑤번 원숭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①번 원숭이가 우리 꼭대기에 있는 바나나를 먹으려고 사다리에 오르니 우리에는 차가운 물이 쏟아진다. ②번 원숭이가 바통을 이어받아 다시 도전에 나선다. 역시 원숭이 다섯 마리가 찬물을 뒤집어쓴다. ③번 원숭이가 사다리에 올라서자 나머지 원숭이들이 협력해 ③번 원숭이를 막아선다. 물이 쏟아질 게 뻔해서다. 재미있는 광경은 ①번 원숭이를 우리에서 빼고 물이 쏟아지는 과정을 지켜보지 못한 ⑥번 원숭이를 투입하면서 시작된다. 이 원숭이가 사다리에 오르자 나머지 원숭이들이 공격을 가한다. ②번과 ③번 원숭이를 대신해 우리에 새로 입주한 ⑦번·⑧번 원숭이도 차례로 도전에 나선다. 하지만 나머지 원숭이들의 강력한 저지로 ⑦번·⑧번 원숭이도 ‘바나나 사냥’을 포기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린 생각해봐야 한다. ⑥번 이후 원숭이들은 바나나에 다가가면 물이 쏟아진다는 걸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적극적으로 새로 입주한 원숭이들의 바나나 사냥을 저지하려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저자가 이 실험을 소개하는 것으로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참고해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한다. 남들이 취하는 행동엔 합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넘겨짚는다. 왜 바나나 사냥에 나서면 안 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집단적 무지’라고 부른다. 저자는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불행과 비극들”은 집단적 무지 탓에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각 챕터의 말미엔 저자가 제시하는 ‘솔루션’이 고명처럼 등장하는데 집단적 무지를 타파하는 해법은 이렇다.
“당신이 비합리적인 전통과 관습에 ‘아니오’라고 작게나마 의견을 표명할 때 당신은 두 가지의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첫째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천천만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둘째는 당신으로 인해 세상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작은 표현이 사람들의 오해와 착각을 일깨울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