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남단 하이난다오(海南島)는 과거 육지인의 발길을 거부하는 외딴 섬이었다. 한번 가면 돌아오기 어렵다는 유배지로 악명이 높았다. 당나라 이후 재상(宰相)급 인사만 14명 넘게 하이난에 유배됐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도 하이난 싼야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소동파는 한을 달래며 거닐었던 곳은 ‘하늘의 끝, 바다 끝’이란 의미의 천애해각(天涯海角)으로 불린다. 그런 하이난성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자유무역항’ 이름표를 달고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27일 찾은 하이난성 남쪽 싼야시의 피닉스아일랜드(鳳皇島·펑황다오)에는 아직 지도에도 없는 인공섬이 하나 더 들어서 있었다. 현재 바이두(百度) 지도에 나오는 펑황다오보다 20% 가량 큰 규모다. 하이난성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아시아 최대 크루즈항 프로젝트 현장이다. 호텔과 리조트, 크루즈선 부두등이 들어선 1기 펑황다오는 2006년에 완공됐고, 2기 펑황다오는 2016년 매립이 완료돼 크루즈항으로 건설되고 있다. 아직 크루즈 터미널 부지는 공터로 남아있지만 15만t급과 22만5000t급 크루즈선 2대씩 총 4대가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접안시설은 공사가 완료됐다. 펑황다오 전체 공사가 완료되면 5~7대의 크루즈선이 동시에 정박 가능한 초대형 크루즈항으로 운영된다.
싼야 시내에서 동쪽으로 차를 타고 40분 정도 가자 하이탕구의 해변가에는 고급 호텔과 리조트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해변에 인접한 싼야 면세점은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바로 길 건너편에 쇼핑과 먹거리, 휴양, 레저가 포함된 대형 복합단지가 새로 건설되고 있었다. 12월 완공예정인 이 단지는 싼야 면세점과 구름다리로 연결돼 싼야의 쇼핑·레저·비즈니스 중심지로 탄생하게 된다.
1988년 중국의 5번째 경제특구로 지정됐다가 쓰라린 실패를 맛봤던 하이난성은 ‘해양 강국’을 기치로 내건 시 주석 체제에서 다시 빛을 보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가 사실상 시작된 2012년 18차 공산당 대회에서 중국은 ‘국가의 해양 권익 수호를 위한 해양강국 건설’을 선포했다. 이후 중국 최남단 하이난이 해양굴기의 거점으로 다시 부상했다. 싼야시에서 동남쪽으로 10㎞ 가량 떨어진 진무자오(錦母角)에는 2013년 초대형 부두가 건설됐다. 이어 중국의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함이 정박하며 하이난다오가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의 전초기지임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중국은 하이난을 군사 측면뿐아니라 관광·쇼핑·컨벤션·의료·IT산업 등이 어우러진 신개념 자유무역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4월 하이난 전역을 자유무역구로 지정하고 ‘중국 특색 자유무역항’을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향후 개혁개방 40년은 하이난 자유무역항이 견인해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으로 선전경제특구를 일궜고, 장쩌민은 상하이 푸둥신구를 밀어부쳐 금융중심지로 키웠다면 시 주석은 슝안신구와 함께 하이난 ‘자유무역항’에 자신의 명패를 내걸었다. 특히 하이난은 시 주석이 올인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거점으로도 거론된다. ‘하이난=시진핑 특구’인 셈이다. 섬 면적 3만5000㎢ 전체가 자유무역구로 지정된 하이난은 기존 중국내 자유무역구 11개를 합한 것보다 크고, 홍콩과 싱가포르, 두바이를 넘어 세계 최대 자유무역항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의 하이난 개발 의지는 인사에서도 드러난다. 2017년 하이난성 서기에 임명된 류츠구이는 해안도시인 푸젠성에서 30년 넘게 근무하고 국가해양국 국장까지 지낸 해양 전문가다. 그는 2014년 하이난성 성장에 기용돼 자유무역구를 구상해왔다. 그의 후임으로 하이난 성장을 맡은 선샤오밍은 20년가까이 소아과 전문의로 활동하다 관료의 길로 들어서 2008년 상하이시 부시장 시절 혁신기술 개발단지 조성을 주도했다.
1988년 경제특구로 지정됐던 하이난은 1992~93년 한때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0%에 달했지만 거품이 꺼져 추락했다. 이후 2010년 국제관광의 섬 계획 등이 구체화되면서 조금씩 재기하고 있다.
하이난은 아직도 대륙과 떨어진 저개발 지역이지만,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정책을 실행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이난성 하이커우시에는 지난해 ‘블록체인 특구’가 지정돼 관련 기업과 기술을 모으고 있다. 중국 정보기술(IT) 공룡으로 불리는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도 블록체인 특구에 큰 관심을 보인다. 매년 보아오포럼이 열리는 하이난 동쪽의 보아오에는 의료와 관광을 결합한 국제의료관광 시범구가 조성된다. 천강 싱가포르국립대 연구원은 최근 하이난에서 열린 포럼에서 “하이난은 지리적 입지가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유사해 서태평양과 중국, 유럽을 잇는 허브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본토와 바다로 떨어져 있어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만한 배후지가 없는데다 핵심 산업을 이끌어갈 인력과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것은 최대 약점이다. 하이난 정부는 각종 유인책을 내걸고 2025년까지 100만명의 인재를 유치하기로 했으나 외딴 지역에 인재가 얼마나 몰릴지는 미지수다.
또 이미 상하이 광둥, 톈진, 푸젠 등 이미 지정된 11곳의 자유무역구가 있는데다 하이난에서 멀지 않은 곳에 광둥과 홍콩 마카오를 잇는 ‘웨강아오 대만구 개발계획’이 진행되고 있어 지역과 어떻게 차별화해 자본과 인력을 끌어들일지 적잖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하이난=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