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박이물범과 어부, 인공 암초에서 ‘상생의 길’ 찾는다

입력 2019-05-04 04:03
점박이물범들이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동북쪽 하늬바다에 있는 물범바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제공

지난달 25일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동북쪽 하늬바다 한가운데에서였다. 물범바위 끄트머리에 점박이물범 3마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들과 함께 배에 타고 있던 ‘점사모(점박이물범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은 “운이 좋다”고 했다. 비바람이 치고, 파도가 높은 날에는 점박이물범이 느긋하게 바위에 드러누워 있는 모습을 육안으로 보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물범바위 주변에서 거센 파도 사이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채 두리번거리는 점박이물범 서너 마리도 보였다.


점박이물범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서식하는 바다표범류다. 겨울철 중국 보하이만·랴오둥만의 유빙 위에서 새끼를 낳고, 봄에 남하를 시작한다. 중국 산둥반도와 한국의 백령도에서 여름을 난다. 1940년대만 해도 서해에 약 8000마리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남획, 연안 개발에 따른 서식환경 악화로 개체 수가 점점 줄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개체 수가 1000마리 미만으로 줄어들었다고 추정된다. 보호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2007년 보호대상해양생물, 천연기념물 제331호, 멸종위기야생동물Ⅱ급으로 지정됐다.


점박이물범의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환경은 바다 가운데 솟아 있는 암초다. 체온 조절과 호흡, 체력 회복 등을 위해 주기적으로 물 밖으로 나와 바위에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런데 하늬바다에 있는 물범바위는 점박이물범 개체 수에 비해 좁은 편이다. 최대 120마리 정도(간조 기준)가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자리 쟁탈전’이 치열하다. 백령도에는 약 200마리의 점박이물범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쟁에서 밀린 점박이물범은 제때 털갈이를 하지 못해 생존을 위협받기도 한다.

이에 해수부는 물범바위에서 남쪽으로 650m 떨어진 곳에 점박이물범을 위한 또 다른 쉼터를 마련했다. 18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해 11월 14일 준공했다. 길이 20m, 폭 17.5m로 점박이물범 약 50마리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규모다. 인공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콘크리트 대신 1㎡ 크기의 자연석을 활용했다. 휴식할 수 있는 상단 마루의 높이를 4단계로 나눠 조수 간만에 따라 물에 잠기기도 하고 수면 위로 노출되기도 한다.

아직 점박이물범들은 이 인공쉼터를 이용하지 않고 있다. 해수부 명노헌 해양생태과장은 3일 “점박이물범이 조심성이 많아서 낯선 장소에 섣불리 가지 않는다. 2~3년쯤 지나 인공쉼터가 익숙해지면 찾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쉼터는 점박이물범 휴식처 이상의 의미도 갖고 있다. 백령도 어민과 점박이물범의 ‘공생’을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백령도의 ‘마스코트’가 됐지만, 사실 어민들에게 점박이물범은 그리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어민들이 생계를 위해 쳐 놓은 어망 등을 망치기 일쑤고, 주요 수입원인 우럭·노래미를 먹이로 삼기 때문이다. 점박이물범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어민들의 불만도 늘어갔다.

물범바위로부터 남쪽으로 650m 떨어진 곳에 만든 점박이물범 쉼터의 조감도. 지난해 11월 준공됐다. 쉼터는 50마리 정도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규모로 조성돼 있다. 해양수산부 제공

이 때문에 해수부는 쉼터를 조성할 때 ‘큰돌 쌓기 공법’을 사용했다. 밑에서부터 돌을 쌓아 올리는 방식이다. 수면 아래 바위틈에 쥐노래미 조피볼락 등 어류가 서식할 수 있고, 해조류가 달라붙어 어초 기능도 할 수 있다. 점박이물범에게는 쉼터가 되고 어민에게는 어자원을 확보할 수단이 되는 셈이다. 해수부 송명달 해양환경정책관은 지난달 25일 열린 인공쉼터 조성 기념식에서 “인간과 해양생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범사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역사회도 점박이물범 보호 활동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백령중·고교 학생 40여명은 2016년부터 점박이물범 동아리를 만들어 생태 특성을 연구하고 개체보호를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 등을 모색하고 있다. 동아리 회장인 백령고 3학년 김준택(18)군은 “처음 동아리를 만들 때 주변 어른들로부터 핀잔을 많이 받았다. 지금은 점박이물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면서 우리 활동을 대견스러워하신다”고 전했다. 점박이물범이 백령도 관광 등 지역경제에 많은 도움을 주면서 점박이물범을 보호하기 위한 모임도 만들어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백령도=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