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먹거리 창출 위해 정부·삼성 ‘시스템 반도체’ 올인

입력 2019-04-30 18:51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이재용(왼쪽 첫 번째) 삼성전자 부회장, 성윤모(오른쪽 첫 번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개발자 등과 함께 이곳에서 세계 최초 EUV(극자외선)공정 7나노로 출하된 웨이퍼·칩을 공개하는 버튼을 누르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반도체’에 사활을 걸었다. 특히 시스템 반도체에 초점을 맞췄다. 향후 10년간 1조원을 투입해 기술을 개발하고, 2만7000명의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전문 인력 1만7000명도 양성한다. 연세대, 고려대, 폴리텍대에 반도체학과를 만든다. 이례적으로 대기업에 세제 지원도 한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10년간 133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삼성전자와 발을 맞춘 것이다. 스마트폰의 응용프로세서(AP)처럼 정보통신기술(ICT) 제품의 ‘두뇌’ 역할을 하는 게 시스템 반도체다. ‘저장’이 목적인 메모리 반도체의 강자인 한국은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에 주목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정부는 ‘질 좋은 일자리’ ‘투자 절벽 해소’를 겨냥하고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가 급감하면서 추락하는 경기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승부수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반도체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무게감도 감안했다. 마땅한 차세대 먹거리가 없다는 절박함도 묻어 난다. 다만 ‘시스템 반도체 육성 전략’이 성공하려면 퀄컴이 글로벌 기업인 애플과 손을 잡은 것처럼 수요처를 확보해야 한다.

정부는 30일 삼성전자 경기도 화성사업장에서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을 열고 5대 중점 대책을 발표했다. 팹리스(설계전문기업), 파운드리(위탁생산기업), 고급 인재 육성이라는 3개 축으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게 핵심이다. 시스템 반도체는 발주하는 기업이 원하는 형태로 설계하는 능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팹리스가 계약을 따내도 제작을 대행할 파운드리가 없으면 허사다. 이런 기반을 만들어주겠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정부는 우선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팹리스를 키우기 위해 2400억원 규모의 공공발주 카드를 꺼냈다. 한국전력공사에서 시스템 반도체를 적용한 지능형 전력계량기(AMI)를 대량 발주하는 식으로 수요를 채울 계획이다. 팹리스에서 일할 전문인력도 2030년까지 1만7000명 육성한다. 폴리텍대학 안성캠퍼스를 반도체 특화형으로 전환하고 2021년부터 연세대, 고려대에 관련 학과를 신설한다. 연구·개발(R&D)에 연평균 1000억원을 투자해 기술력도 키운다.

또 삼성전자와 같은 파운드리에 ‘인센티브’를 준다. 세금 혜택과 금융 지원을 병행키로 했다. 정부는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와 맞물리면 2만7000명의 고급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시스템 반도체 육성은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전망과 맞닿아 있다. 경기 하강 국면에서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낼 호재라는 것이다. 고급 인력의 창업이나 고용을 유발한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정부는 메모리 반도체 의존도를 대체할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한다는 측면에서도 효과적이라고 본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90억 달러로 전체 수출액(471억1000만 달러)의 19.1%를 차지했다. 반도체가 휘청이면 한국의 수출 전체가 휘청이는 구조에 ‘방파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수요처 잡기가 관건이다. 정부가 1998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시스템 반도체 육성책을 내놨지만 한국의 시장 점유율이 3.1%에 그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대책에서 민간 수요 창출에 대한 구체적 전략이 없는 게 약점이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현대모비스 같은 민간 수요 기업과 실리콘웍스 등 팹리스가 참여하는 장을 만들었다”며 “매년 300억원을 투자해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구조를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