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31년 만에 저물고 ‘레이와(令和)’ 시대가 새로 열렸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202년 만에 처음으로 생전 퇴위식을 하고 장남 나루히토(德仁·사진) 왕세자에게 왕위를 넘겼다.
첫 ‘전후 세대’(1945년 이후 출생 세대) 일왕을 맞은 일본 국민은 장기 불황과 자연재난으로 얼룩졌던 헤이세이 시대를 벗어던지고 미래로 나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레이와 시대 개막이 과거사 문제에 발목 잡힌 한·일 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지는 불투명하다.
아키히토 일왕은 30일 오후 5시 도쿄 왕궁 ‘고쿄(皇居)’ 내 영빈관 마쓰노마(松の間)에서 퇴위식을 가졌다. 아키히토 일왕은 “즉위 이후 30년 동안 국민에 대한 깊은 신뢰와 경애를 갖고 천황으로서의 책무를 맡을 수 있어 행복했다”며 “나를 상징으로 받아들여주고 지지해준 국민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내일(1일)부터 새로 시작하는 레이와 시대가 평화롭고 풍요로울 수 있도록 황후와 함께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앞서 아키히토 일왕은 나루히토 왕세자, 차남 후미히토 왕자와 함께 고쿄 내 신전 규추산덴(宮中三殿)을 찾아 조상에게 퇴위를 보고하는 의식을 치렀다.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 헤이세이는 1일 0시를 기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레이와로 대체됐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1일 오전 10시30분 즉위식을 하고 126대 일왕으로 취임한다. 이어 오전 11시10분 취임 후 첫 연설을 갖는다. 상왕(上皇·조코) 신분으로 물러난 아키히토 일왕은 도쿄 소재 저택에 마련된 임시 거처에서 1년 반 남짓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나루히토 왕세자 거처였던 아카사카(赤坂) 동궁에서 여생을 보낼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레이와 시대 개막을 한·일 관계 회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키히토 일왕에게 친서를 보내 한·일 관계 발전에 기여한 데 사의를 표하고 퇴위 후에도 양국 관계 발전에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페이스북에 “한·일 양국이 새로운 우호협력 관계를 구축하도록 지도자들이 함께 노력하자”고 밝혔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는 나루히토 천황의 즉위를 축하하고 앞으로도 한·일 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우경화 정책이 더욱 노골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새 일왕 즉위가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일본 천황제는 상징적 제도이기 때문에 새 일왕이 행정부를 담당하는 아베 정권과 외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관계를 가질 수 없다”면서 “다만 아베 정권이 레이와 시대 출범을 맞아 보다 적극적이고 새로운 외교적 자세를 취하려 할 수는 있다”고 전망했다.
조성은 권지혜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