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기분에 달린 근로자의날 휴무

입력 2019-05-01 04:06

‘근로자의 날’을 하루 앞둔 30일,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모(29)씨는 사장의 변덕에 하루 종일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사장은 ‘요즘엔 일이 많이 없으니 근로자의 날에 쉬도록 하자’고 했던 말을 2시간여 만에 뒤바꿨다. 김씨는 “사장이 팀장과 다른 문제로 다툰 뒤 휴무 결정을 취소했다”며 “사장 기분에 좌우되는 ‘근로자의 날’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회사를 다니는 박모(31)씨도 사장 비위를 맞추느라 하루 종일 힘들었다. 박씨는 “사장이 ‘직원들 일하는 거 보고 쉴지 말지 결정하겠다’며 근로자의 날 전날까지 휴무 여부를 말해주지 않았다”며 “팀원 전체가 눈치를 살피며 일했다”고 말했다.

근로자의 날 휴무 결정이 사업주 변덕에 좌우된다는 직장인들 토로는 올해도 변함이 없다. 영세 기업에선 당일 근무하면 받아야 하는 추가수당을 떼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근로자의 날은 근로기준법에서 지정한 법정 휴일이다. 대통령령으로 정한 법정 공휴일과 달리 이날 근무는 불법이 아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1026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는 지난 25일 기준 ‘근로자의 날에 출근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답한 응답자가 7%를 차지했다. 근로자의 날 전날까지도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내일 쉬는지 여부를 상사에게 어떻게 물어보면 좋을까’라는 고민이 다수 올라왔다. 디자인업체에서 일하는 A씨(28)는 “‘누가 총대를 메고 사장에게 근로자의 날 휴무를 물어볼지’를 팀원끼리 의논했지만 나서는 이가 없었다. ‘이럴 바에야 그냥 출근하자’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근로자의 날에 근무하면 추가수당을 받을 수 있지만 이 또한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 설문조사에서 이날 출근한다는 직장인(응답자 중 40%) 가운데 휴일 수당을 받는다는 이는 19%에 불과했다. 추가수당을 주지 않은 사업주는 처벌받지만 소규모 업체에서 근로자가 신원이 드러날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주를 신고하긴 어렵다. 5인 미만 사업체는 추가수당 지급 의무마저 면제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근로자의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건 국가 경제적으로 부담이 있다. 회사 업무량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게 하다보니 생기는 부작용”이라며 “사장 개인 한 명의 기분에 근로자의 휴무가 좌우되지 않도록 업체들이 일정 기준을 정해 사전에 휴무 여부를 알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5인 미만 영세 기업에도 휴일 수당 지급 의무가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