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혁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둘러싼 자유한국당과 여야 4당 간 힘겨루기는 ‘동물국회’ 그 자체였고, 2012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최악의 물리적 충돌이었다. 특히 30일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전후해 여야는 총력을 다해 싸우면서 여러 진풍경을 연출했다.
선거제 개혁안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해 소집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여야 4당에 맞서 한국당 의원들이 ‘속사포 항의’와 ‘기표소 필리버스터(의사진행 고의 저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싸웠다. 정개특위 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회의 내내 마치 랩을 하듯 속사포로 여야 4당 의원들 발언에 견제구를 날렸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이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한 투표를 진행하려 하자 다가가 “위원장님 독재하십니까. 독재입니까”라고 따졌다. 꿋꿋이 의사진행을 이어가던 심 위원장이 급기야 “정말 시끄러워죽겠네”라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김재원 한국당 의원은 무기명 투표가 시작되자 기표소에 들어간 뒤 약 10분간 나오지 않았다. 심 위원장이 “5분 안에 안 나오면 투표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독촉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정말 가지가지 한다”고 개탄했다. 반면 한국당 의원들은 “찬반 어느 쪽을 택할지 고민이 많은가보죠”라며 옹호했다. 장 의원이 회의 산회 전 회의장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심 위원장은 방호과 직원에게 제지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장 의원은 자신을 막아선 방호과 직원에게 “뭐야, 이거. 국회의원을 밀어?”라고 윽박지르는 모습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임이자 한국당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에서 정의당 출신인 유시민 작가 책을 인용해 “유 작가 저서 ‘국가란 무엇인가’에 보면 ‘정치인은 열정과 책임, 균형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돼 있는데 심 위원장도 균형감각을 갖춰야 한다”고 훈수했다.
임 의원은 김상희 민주당 의원이 “자한당 의원들은 반성하세요”라고 말하자 “자한당이라니, 한국당이라고 하세요”라고 맞받아쳤다.
정개특위에 앞서 개의한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여야의 신경전은 치열했다. 특히 최근 사·보임 논란 속에 교체돼 들어온 바른미래당 의원들을 향한 직간접적인 공세가 도드라졌다. 오신환 의원은 사개특위 회의장에 들어와 자신과 교체돼 투입된 임재훈·채이배 의원 바로 옆자리에 앉은 채 ‘불법 사·보임 원천무효 의회폭거 중단하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다. 곽상도 한국당 의원은 임·채 의원을 향해 “남의 보직 가로채고 있어서 행복하십니까”라고 쏘아붙였다.
선거제 개혁안과 공수처법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에 대한 여야 희비는 확연히 엇갈렸다. 사개특위에서 공수처법 등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자 한국당 의원들은 회의장 밖 복도에 ‘오늘 민주주의는 죽었다’고 적힌 현수막 아래에 눕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한국당은 사개특위와 정개특위 산회 직후 소집한 의원총회를 묵념으로 시작하면서 “오늘 조종(弔鐘)을 울린 민주주의에 대한 추념”이라고 했다. 황교안 대표도 “오늘로 20대 국회는 종언을 고했다”고 말했다. 박대출 의원은 “이 작은 저항의 물방울이 민주주의를 유린한 저들을 삼키길 소망한다”며 삭발했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여의도 국회 인근 한 감자탕집에 모여 자축연을 했다. 때마침 홍영표 원내대표의 62번째 생일을 맞아 케이크와 함께 조촐한 축하 자리도 가졌다. 한 참석자는 “의원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동시에 집권여당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잘 챙겨나가자는 얘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패스트트랙 지정 소식이 전해진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패스트트랙 지정은) 의회주의적 타협의 산물이자 촛불혁명에 참여한 주권자 시민의 요청이 법제화되기 시작하는 것”이라며 자평하는 글을 올렸다. 조 수석은 앞서 1987년 민주화운동 장면과 한국당의 장외투쟁 장면을 비교하는 사진을 올리는 등 여야 대치 정국 내내 활발하게 SNS를 했다.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사개특위 위원 사·보임으로 리더십 위기에 몰린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오전 기자회견에서 “(교체된) 권은희·오신환 의원에게 마음의 상처를 드린 점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종선 신재희 심우삼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