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레이와 시대 개막… 대일 외교의 기회로 삼아야

입력 2019-05-01 04:05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퇴위했다.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즉위하는 1일 일본은 새 연호인 레이와(令和) 시대를 시작한다. 아키히토가 재위한 30년 동안 일본인은 잃어버린 20년의 불황과 동일본대지진을 비롯한 대형 재난을 겪었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중첩된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연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다. 우리의 아픈 과거와 뗄 수 없는 나라지만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이웃이기도 하다. 경사에 축하를 보낸다. 나루히토는 2015년 기자회견에서 “겸허하게 과거를 돌아보고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비참한 경험과 역사를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친과 같은 평화주의자의 길을 걷기를 바란다.

일본은 총리에 이어 왕도 전후세대가 맡게 됐다.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성숙한 파트너가 될 외형적 여건을 갖춘 듯하지만 일본 정부의 움직임은 기대보다 우려를 갖게 한다. 군사대국화를 위한 개헌 방침을 갈수록 노골화하고,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에서 퇴행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새 왕의 등장과 새로운 연호가 우경화를 재촉하는 계기로 악용돼선 안 될 것이다. 최근 한·일 관계는 극도로 악화됐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초계기 레이더 논란 등이 잇따르면서 상대방을 향해 거친 언행을 서슴지 않는 대결 국면이 조성됐다. 양국 정부는 이런 상황을 해소하는 데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외교적 갈등을 이용하려 한다는 인상마저 준다. 외교 문제가 경제교류에 미치는 악영향이 표면화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다. 양국 모두 전향적인 자세로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일왕 교체에 맞춰 우리 정부가 내놓는 메시지는 소극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키히토 일왕에게 서한을 보내고 이낙연 총리가 SNS에서 양국의 우호협력관계를 언급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면 대통령이 축하하러 가는 것도 생각해볼 만한 외교의 기회를 이렇게 흘려보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곧 일본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경제와 안보를 위해 적극적인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익을 위한 지혜로운 행동에 나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