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미, 6자회담 선호 안해… 단계적 비핵화는 과거 모두 실패”

입력 2019-04-30 04:02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3월 백악관 잔디밭에서 언론 인터뷰에 응하던 중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볼턴 보좌관은 28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6자회담 복원 제안에 부정적 반응을 피력하며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 이행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P뉴시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러시아가 꺼내든 북핵 6자회담에 대해 “미국이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다”고 말했다. 북·미 협상이 중단된 틈을 파고들어 비핵화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러시아를 견제하고 나선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28일(현지시간) 방송된 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과 러시아 등 다른 나라들이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는 것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미국은 이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는 “김정은은 최소한 지금까지 미국과 일대일 접촉을 원했고 그렇게 해왔다”며 “6자회담식 접근방법은 과거에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단계적 비핵화를 추진했던 과거의 모든 정책들도 실패했다”고 단정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러 정상회담 직후 꺼낸 6자회담과 북한이 요구해온 단계적 비핵화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는 북한과의 추가 정상회담에서 일괄타결식 빅딜을 추진한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볼턴 보좌관은 “북한과 대화의 문은 열려 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올바른 시점에 3차 북·미 정상회담을 가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용차에 동승할 만큼 위상이 강화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자신을 ‘멍청해 보인다’고 인신공격한 데 대해선 “잘 지내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볼턴 보좌관은 또 최근 북·중·러 밀착 움직임을 의식한 듯 “러시아와 중국은 대북 제재를 강화할 수 있다”며 “이들은 지난 몇 달 동안 매우 잘했지만 더욱 철저하게 제재를 이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과 러시아의 철도 연결 가능성을 보고 싶은 것”이라며 “러시아와 북한 사이엔 무역 거래가 많지 않다. 푸틴 대통령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한국과 러시아 간 철도 연결을 추구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북핵 문제의 이해당사국이면서도 존재감이 미미했던 러시아는 현 정세를 십분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한동안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지만 미 정부 내 반러 기류가 강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러시아로서는 일정 기간 미국과의 냉각기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전략적으로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는 특히 극동 개발에 관심이 많은데, 이를 위해선 안보 위협 해소와 역내 국가들 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미국과 무역협상을 하고 있는 중국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입장이기도 하다.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궁)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28일(현지시간) 현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에게 북한은 인접국이며 국경을 맞댄 나라로 우리가 북한 문제를 다루는 것은 우리 지역 안에서 활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미국이 북한을 상대하는 것은 미국의 주변이 아니라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가 북핵 문제의 당사자임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장세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9일 “러시아는 북핵 협상에 관여할 기회를 계속 엿보고 있었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역할을 할 공간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러시아가 무조건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건 아니다”며 “양국은 비확산이라는 공통의 이익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핵 문제에선 교섭하고 협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지혜 이상헌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