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으로부터 사상 최악의 테러를 당한 스리랑카 정부가 무슬림 여성들의 얼굴을 가리는 전통의상인 부르카와 니캅 착용을 금지했다. 테러를 예방하려는 조치라지만 이슬람을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대통령은 28일 성명을 통해 “어떤 형태로든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것을 금지한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시리세나 대통령은 “이번 금지 조치는 국가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누구도 얼굴을 가려서 신원을 알아보기 어렵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스리랑카 정부의 조치는 사실상 이슬람 여성들이 착용하는 베일을 겨냥했다. 스리랑카 내 무슬림 여성들은 머리와 목을 가리고 얼굴은 드러내는 히잡과 차도르는 계속 입을 수 있지만, 눈만 내놓는 니캅과 눈까지 그물로 완전히 가린 부르카는 착용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정작 부활절인 연쇄 폭탄 테러를 주도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내셔널타우힛자맛(NTJ) 조직원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이들의 테러 계획을 다 알고도 막지 못한 스리랑카 정부가 애꿎은 소수 여성들의 옷차림을 문제 삼은 것이다. 사실상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스리랑카 사회의 분노가 이번 조치를 끌어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스리랑카 이슬람 지도자들은 이슬람교도가 보복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여성 신도에게 얼굴을 가리지 말라고 촉구했다.
무슬림 여성이 쓴 베일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이슬람국가(IS)가 곳곳에서 테러를 벌이는 등 본격적으로 세를 불린 2011년 이후 이런 주장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유럽에서는 시리아 내전과 난민 위기 이후 극우 정당들이 부르카 금지법을 주도했다. IS 조직원 등이 벌이는 테러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프랑스가 2011년 4월 공공장소에서의 부르카 착용을 금지한 것을 시작으로 불가리아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덴마크 등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시행했다. 아시아에서는 신장위구르 지역 무슬림인 위구르족 관리에 애를 먹고 있는 중국이 관련 법안을 도입했다.
캐나다 퀘벡 정부는 6월부터 경찰 검사 교사 등에게 부르카, 니캅 등이 포함된 종교적 상징물을 착용하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