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마저 극우 정당 돌풍… 44년 만에 의회 입성 ‘파란’

입력 2019-04-30 04:08
극우 정당인 복스(VOX)의 산티아고 아바스칼 대표가 스페인 조기 총선이 실시된 28일(현지시간) 마드리드의 선거본부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연설하고 있다. 이날 복스는 350명을 뽑는 하원의원 선거에서 득표율 10%로 24석을 획득하며 스페인 극우 정당 최초로 의회에 입성했다. 아바스칼은 투표 결과가 나온 뒤 “복스는 스페인을 정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AP뉴시스

유럽에 불고 있는 ‘극우 돌풍’이 결국 스페인에도 상륙했다. 28일(현지시간) 실시된 스페인 총선에서 극우 정당이 민주화 이후 44년 만에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했다. 1975년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정권이 막을 내린 뒤 반(反)국가주의 여파로 극단적 보수주의가 득세하지 못했던 스페인까지 극우 세력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됐다.

극우 포퓰리즘을 앞세우는 스페인 정당 복스(VOX·라틴어로 목소리라는 뜻)는 이날 치러진 하원의원 선거에서 득표율 10%를 얻어 전체 350석 중 24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 사회당은 득표율 29%로 과반에 못 미치는 123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스페인 헌정 사상 최초로 불신임투표에 따라 집권당에서 물러난 중도 우파인 국민당은 득표율 17%로 66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번 스페인 총선에서 단연 돋보인 건 극우 정당 복스의 약진이다. 과거 국민당 소속의 우파 성향 의원들이 주축이 돼 6년 전 창당한 복스는 2016년 총선 때만 해도 득표율이 고작 0.2%에 불과했다. 당시 스페인 국민들은 민족주의와 네오콘(신보수주의), 반여성주의 등을 표방하는 복스를 외면했다. 지금도 복스는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 여성의 낙태권, 현 정부의 포용적인 난민 정책 등에 반대하고 있지만 3년 만에 유권자들이 바뀐 것이다. 보니 필드 벤틀리대 정치학 교수는 “복스의 부상은 분명 스페인 정치의 대변혁”이라고 BBC방송에 말했다.

복스는 최근 1년 새 본격적으로 세를 얻었다.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반난민 정서가 스페인행 난민들의 주된 입국 통로인 남부 안달루시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복스 당대표인 산티아고 아바스칼은 “국경을 강화하고 불법 이민자들은 추방하겠다”며 “합법적으로 이민 왔어도 범죄를 저지르면 내쫓을 것”이라고 공언하며 표심을 모았다. 아바스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슬로건을 본떠 “스페인을 다시 위대하게(make Spain great again)”라고 말하며 민족주의를 부추기기도 했다.

카탈루냐 분리독립에 반대하는 우파 유권자들이 2017년 10월 카탈루냐 지방의회의 독립선언을 막지 못한 국민당에 등을 돌리고 복스 지지 쪽으로 옮겨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스페인 시민은 “이번 총선의 핵심은 카탈루냐”라며 “복스는 카탈루냐 분리독립에 가장 확실하게 반대한 정당”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기성정치의 부정부패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복스에 표를 던졌다는 관측도 있다. 국민당 소속 마리아노 라호이 전 총리는 지난해 6월 불법 정치자금 및 뇌물수수 혐의를 받아 스페인 역사상 최초로 불신임 투표를 통해 불명예 퇴진한 총리가 됐다.

‘극우 무풍지대’로 꼽혔던 스페인마저 극우 세력의 활동 무대로 떠오르자 유럽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와 헝가리에선 극우 정부가 집권해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 14일 실시된 핀란드 총선에선 중도 우파 성향의 집권 중도당이 몰락하고, 극우 정당인 핀란드당이 득표율 2위에 올랐다. 지난해 스웨덴 총선에서도 반난민 정책을 앞세운 스웨덴민주당이 3위를 기록했다. 오는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민족주의와 반이민 정서를 표방하는 유럽 내 극우 정당들이 연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이탈리아 안사통신은 전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