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로 대출”… 보이스피싱 사기, 캠코·국민행복기금까지 사칭

입력 2019-04-30 04:03

김모씨는 최근 ‘저금리로 대출이 가능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국민행복기금 등이 운영하는 서민 대출이라고 했다. ‘나라에서 해주는 대출’이란 말에 의심 없이 전화를 걸었다.

자신을 서민금융지원센터 직원이라고 밝힌 상대방은 김씨의 인적사항, 채무 내역을 물었다. 가심사를 해야 하니 캠코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사진 왼쪽), 기존 대출금을 일부 입금해 달라고 했다. 김씨가 의심하자 국민행복기금 로고와 부서명이 새겨진 사원증 사진(오른쪽)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래도 미심쩍은 김씨는 캠코 지역본부를 찾아갔다. 사원증에 등장하는 직원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눈 뜨고 코 베인다고 자칫하면 보이스피싱에 당할 뻔한 것이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의 수법이 날로 대담하고 정교해지고 있다. 검찰 수사관이나 금융감독원 직원 사칭을 넘어 서민금융기관을 거론하며 현혹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저금리 대출이라는 점을 앞세워 유인한 뒤 위조 신분증을 제시하고, 해킹 기능이 포함된 스마트폰 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하는 수법이다. 이렇게 설치된 악성 앱은 피해자가 해당 기관에 확인 전화를 걸어도 사기범들에게 자동 연결되도록 한다. 피해자는 기관 직원과 통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사기범과 통화를 하는 것이다. 캠코 관계자는 “사기범들이 갈수록 대범해져 소위 ‘전화 가로채기’ 등 지능화된 사기 수법을 쓴다”며 “캠코와 국민행복기금 등은 대출 알선 및 스마트폰 앱, 문자 메시지 등을 사용한 모객 행위를 하지 않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통장에 있는 돈뿐만 아니라 대출까지 받아내 가로채기도 한다. 50대 여성 A씨는 가짜 소액결제 문자메시지를 받고 이를 취소하려고 전화를 걸었다가 2억9000만원 상당의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했다. 사기범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A씨는 스마트폰 원격제어 앱을 설치했고, 사기범 요구에 따라 일회용 비밀번호(OTP)를 불러줬다. 사기범은 A씨 통장의 이체한도를 올려 1억8000만원을 챙기고, A씨 카드로 카드론을 받아내 1억1000만원을 더 가져갔다. A씨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지방경찰청 관계자는 “돈이 있어야 보이스피싱을 당한다는 인식도 달라져야 할 때”라며 “항상 보이스피싱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9일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4440억원으로 전년(2431억원)보다 82.7% 급증했다. 금융 당국과 수사기관 노력에도 줄지 않고 있다. 피해 예방을 위해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까지 등장했다. 사기 문자메시지의 문구와 보이스피싱 음성 내역 등을 분석해 사기 여부를 스마트폰 화면에 보여주는 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수법이 나날이 고도화되면서 AI 분석 기술까지 활용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