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여름 스페인 산티아고를 다녀왔다. 시어머니를 모시며 아이 셋을 키워온 아내와의 결혼 20주년이 되는 해였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도 싫어하고, 여행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아내가 몇 번씩이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는데, 다행히 가까운 벗들의 도움으로 꿈이 이뤄졌다.
벗들과 함께 길을 걷는다는 안도감도 잠시, 순례를 시작한 지 며칠 안 돼 발생한 아내의 다리 부상으로 일행과 헤어지게 됐다. 우리 부부에게 남겨진 것은 각자의 배낭과 상세한 순례 여정 정보가 담긴 지도 한 장이었다. 침울한 기분으로 하루 길을 버스로 이동하면서 포기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아내는 목적지인 산티아고까지 가겠다고 했고, 절뚝거리며 며칠을 버티더니 결국 순례길을 완주하고야 말았다.
요즘 아내와 ‘스페인 하숙’이라는 TV 프로그램을 함께 보곤 한다. 노란색 화살표, 먼지 입은 등산화, 소박한 2층 침대, 각양각색의 순례자들로 뒤섞인 숙소 ‘알베르게’의 풍경이 정겹다. 물론 화면 속 숙박시설이나 음식보다 현실은 훨씬 더 열악하지만, 알베르게의 인정 넘치고 따뜻한 풍경은 그대로였고 주인들의 미소와 친절함도 다르지 않았다.
각자의 인생과 순례 여정에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들지만, 서로를 향한 배려가 있는 길이었다. 인종과 성, 나이와 국적과 언어는 다양하지만, ‘다름’보다는 ‘같음’에 집중하려는 노력이 있는 길이었다. 서로의 숨소리와 코 고는 소리를 지척에서 들으며 잠들만큼 좁은 숙소였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상생과 공존의 공간이었다.
순례를 마치고 귀국한 후 연구실에 앉아 한두 주 동안 매일 똑같은 생각을 했다.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닌데’라는 다소 황당한 생각이었고 ‘오늘도 누군가는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을 텐데’라는 질투 섞인 부러움이었다. 산티아고 길에서 주어온 작은 돌멩이에 노란색 화살표를 그려 책꽂이에 얹어놓고 언젠가 다시 가겠다고 벼르기 시작한 지도 벌써 7년이 흘렀다. 하루하루 몸도 의지도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시간이 결코 내 편이 아니라는 초조한 마음만 생기고 있다.
참 이상했던 일은 순례의 목적지인 산티아고에 도착했는데도 별다른 감흥을 못 느꼈던 우리 부부의 모습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기쁨보다는 한 달여 걸어왔던 순례 여정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훨씬 더 컸다. 그리고는 이내 순례의 의미는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 그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지나온 온갖 종류의 순례길(산길, 들길, 숲길, 새벽길, 뜨거운 태양 아래의 길, 좁은 동네길, 큰 광장 길, 꽃길, 그리고 가축 배설물과 냄새로 뒤덮인 길 등) 위에 서 있던 우리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순례였고 주일날 교회조차 없는 들판에 잠시 멈춰 성경 보고 기도하던 곳이 예배 자리였다. 무엇보다 한 달여를 온종일 붙어있었는데도 두 번밖에 부부싸움을 하지 않은 놀라운(?) 은혜도 경험했다.
부활절을 보내며 예수님의 여정을 생각한다. 한 신학자는 예수님의 삶을 ‘길’이라 표현했다. 그만큼 예수님은 부지런히 살았던 분이다.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십자가로, 십자가에서 무덤으로, 무덤에서 하늘로, 그리고 다시 우리에게로 오실 분이다. 태어나자마자 헤롯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을 가야 했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한 날로부터 익숙한 곳에 안주하기보다 광야 길과 산길, 마을 길을 끊임없이 걸으셨다. 예루살렘에서 생의 마지막 일주일을 보냈을 때도 하나님 나라를 향한 바쁜 여정이었다.
먼저 잠든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만날 부활의 아침을 기다린다. 부끄럽고 부족하고 시행착오도 많은 인생이지만 하루하루 예수님을 뒤따라 걷다 보면 마침내 인생의 순례 여정을 그럭저럭 잘 마무리할 날이 올 것이고 그런 뒤에는 잠시 머무는 ‘하숙’이 아니라 눈물도 한숨도 없는 영원한 ‘본향’에서 평안히 머물 날이 오리라는 욕심도 가져본다.
탁지일(부산장신대 교수·현대종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