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민세진] 누구를 위한 제로페이인가

입력 2019-04-30 04:10

동네 단골가게에 작년 여름 노란 QR코드판이 등장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카오톡 앱에서 QR코드를 찍으면 내 계좌에서 가게 주인 계좌로 직접 송금되는 결제 방식이다. 매번 소액결제인데 카드까지 긁는 것이 미안했던 터라 신문물도 접할 겸 해보기로 했다. 가게 주인도 어떻게 쓰는 건지 모른다고 해 둘이 머리를 맞대고 이것저것 누르다가 결제에 성공했다. QR코드 찍고 결제액을 직접 입력하는 수고는 있지만 단골인데 그 정도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이용했다. 그렇게 반년을 쓴 올해 초, 무슨 기술적 문제인지 QR코드 결제가 잘 안 된 적이 있었다. 주인은 카드 수수료가 인하됐으니 굳이 QR코드 결제하려고 애써주지 않아도 된다며 카드를 받았다. 앞으로 다시 카드 쓰라고도 했다. 카카오페이로 연결된 계좌가 사실은 같이 장사하는 남편 계좌라는 귀띔과 함께.

작년 말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서울시의 제로페이가 시작됐을 때 그 앞길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전망은 여기저기서 나왔다. 장사하는 입장에서 손님한테 번거로운 부탁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한 가지 요인이었다. 그런데 가게 주인이 카카오페이든 제로페이든 새로운 결제 방식을 선호할 이유마저도 정부가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하면서 많이 축소됐다. 손님들이 카드로 결제한 금액의 일정 비율을 가게들이 신용카드 회사에 지불하는데, 그 비율이 낮아져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카드를 받는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제로페이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가게 주인 대신 손님에게 당근을 제시했다. 제로페이 사용금액의 40%를 연말정산할 때 소득에서 공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신용카드 공제율이 15%, 현금사용처럼 취급되는 카카오페이가 공제율이 30%이니 나름 파격적인 조건이다.

그런데 이쯤 되면 정부가 왜 더 많은 소득공제 혜택까지 주면서 제로페이를 권장하는지 의아해진다. ‘소상공인의 결제수수료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이것이 제로페이 도입의 유일한 목적이다. 하지만 이미 결제수수료 부담은 낮아질 대로 낮아졌다. 더구나 결제수수료 때문이라면 소상공인 입장에서 카카오페이나 제로페이나 다를 바가 별로 없는데 소득공제 혜택을 달리 주는 것도 앞뒤가 안 맞는다. 존재 근거가 없어진 제로페이를 그저 밀어주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제로페이를 홍보하고 운영하는 비용이 세금에서 나오고, 제로페이를 밀어주는 것이 새로운 결제방식을 개발하려는 민간의 노력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사실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정부가 애초에 왜 신용카드든 현금영수증이든 내가 얼마를 썼는지 증빙을 하면 소득에서 공제해 주기로 했냐는 것이다. 시작은 1999년 신용카드 사용액에 소득공제가 도입되면서부터였다. 자영업자의 소득을 잘 파악할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거래 증빙이 가능한 신용카드 사용을 소비자에 소득공제를 해줌으로써 장려하게 된 것이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카드 발급과 사용의 부작용으로 2000년대 초반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를 겪기는 했지만, 이제는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에 익숙해져서라도 카드 사용이 일상화됐다. 현재 우리나라의 신용카드 사용비율은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어서 정부는 스스로 초래한 이 상황에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됐다. 순전히 민간에서 결정할 사항인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정부가 나서서 낮춰 온 것도 그러한 책임감의 발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이렇게 계속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몇 달 전부터 불거진 신용카드사와 대형가맹점 간 수수료 갈등은 그 원인이 영세가맹점 수수료를 억지로 낮춰 받게 된 신용카드사들이 대형가맹점으로부터 받는 수수료를 올리려 한 것에도 있다. 이 상황에도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늪에 빠지는 길이겠지만 뒷짐만 지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 이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퇴로를 모색할 때도 됐다. 질서 있게 물러나는 것이 진정 책임 있는 자세일 것이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