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가 ‘정치의 종언’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여야가 퇴로 없는 대치에 들어간 지난 24일 이래 대화와 협상, 타협은 국회의사당에서 종적을 감췄고 그 자리를 ‘배지’들의 고성과 멱살잡이, 속칭 빠루(쇠지렛대)와 망치 등 반(反)정치적 구태들이 뒤덮었다. 여야 저마다 ‘헌법과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 기득권 유지라는 정략적 이해관계가 자리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야의 ‘힘 대 힘’ 대치 상황은 주말에도 계속됐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8일 기자회견에서 “선거제 개편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결코 폭력으로 저지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자유한국당 의원들에 대한 추가 고발을 예고했다. 민주당은 이미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과 보좌진 20명을 국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홍 원내대표는 “고발 취하는 절대 없다”고 했다.
이에 나 원내대표는 “한국당 의원 전원이 고발돼도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맞섰다. 한국당은 27일 홍 원내대표 등 민주당·정의당 의원 17명을 공동상해 등 혐의로 맞고발했다. 오신환·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을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에서 사임시킨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문희상 국회의장에 대해서도 직권남용 혐의를 달아 고발장을 제출했다.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무차별 고발전을 벌이면서 검찰 손에 처분을 맡기는 ‘피의자 국회’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양쪽은 이미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합의를 기점으로 국회 곳곳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육탄전을 불사하면서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파왔다. 이날도 여야는 경쟁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상대의 처사를 거친 말로 공격하고, 깎아내리는 일에 열을 올렸다.
정치 전문가들은 기득권 정당의 오랜 ‘적대적 공생관계’가 재연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민주당과 한국당 모두 정국 주도권 확보, 지지층 결집 등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계산 속에 움직이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여야의 극한 대치로 전선이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되면 내년 총선에서 1등 아니면 2등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완전히 파워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TV 화면을 통해 실시간 중계되는 국회의 퇴행적 충돌 장면이 결국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와 반감, 외면을 부추길 수 있다는 데 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기성 정치에 대한 혐오는 유권자들의 정치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며 “당장 대안이 될 만한 제3의 정치 구심점이 없어 편싸움은 오히려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동시에 기성 정치권 전반에 대한 심판론이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의원들이 바닥에 드러눕고 물리력을 동원해 싸우면서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리는데 정치 개혁, 국회 개혁을 할 수 있겠느냐”며 “유권자들도 큰 불만을 갖고 부글부글 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날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여야 모두 의회주의의 원칙과 상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여야는 한 주가 시작되는 29일 더 큰 일전을 벌이기 위한 준비태세에 들어갔다.
지호일 심우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