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협상에서 미국을 견제하는 북·중·러 간 결속이 한층 탄탄해졌다. 북한은 지난주 북·러, 중·러로 이어진 연쇄 정상회담을 통해 지금의 북·미 협상 구도를 흔들고 미국에 압박 신호를 보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메시지와는 별개로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 보장과 이를 위한 다자협의체 논의가 현실화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러시아와 중국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공동구상을 갖고 있다”며 “이제 그곳에서의 근본적인 문제(전쟁 상태)를 종결하고 안보 측면에서 북한에 충분한 조건을 강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정은(얼굴)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한 뒤 26일 일대일로 정상포럼 참석차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북·미 대화가 주춤한 사이 푸틴 대통령이 북·중·러를 연결하고 목소리를 내는 메신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북·러 정상회담 결과를 상세히 설명하고 한반도 상황에 대한 견해를 교환했다고 밝혔다.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 보장이 새로운 요구는 아니다. 북한은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평화협정 체결 전 과도기적 안전보장책으로 종전선언을 주장했다가 미국이 호응하지 않자 제재 완화로 방향을 틀었다. 단 체제보장 문제는 주한미군 주둔을 비롯해 유엔사령부 지위, 미국의 핵우산 정책 등 정치·군사·경제 분야 의제를 포괄하는 것이어서 북한이 작정하고 이를 들고나오는 순간 비핵화 협상은 사실상 물건너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여기에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주변국들이 가세하면 타협점을 찾기 더 어려워질 것이란 분석이다.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 때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전적으로 미국의 차후 태도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말해 협상 재개의 공을 미국에 넘겼다. 미국은 제재 전선에 구멍이 생겨 대북 지렛대가 약화되는 상황을 가장 경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중·러 밀착 움직임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피한 채 중국과 러시아 모두 북한 비핵화를 돕고 있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들 모두 북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에 공감하고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제재 전선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견제구를 날린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북한과 잘 지내고 있고 많은 진전을 이뤄냈다”며 “푸틴 대통령이 어제 성명을 발표한 데 대해 감사를 표한다. 푸틴 대통령 또한 그것(북한 비핵화)이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성명’은 남북, 북·미 대화를 지지한다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어 “중국은 자발적으로 미국을 돕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중국은 인접 국가의 핵보유를 원하지 않을뿐더러 지금 무역협상이 잘 진행되기 때문에 (북핵 문제에서) 우리를 돕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북한에서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병원비로 200만 달러(약 23억원)를 북측에 전달했다는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대해 “가짜뉴스”라며 “우리 위대한 오토를 위해 지불한 돈은 없다”고 말했다.
권지혜 조성은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