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선거제도 개편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위한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논의가 처음 시작된 건 지난해 12월이다.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15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검토하고, 2019년 1월까지 선거제 개혁 관련 법안을 합의 처리한다’는 내용의 극적 합의를 도출했다. 선거제 개편으로 의석을 늘리고 싶어 하는 바른미래당 손학규,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벌인 지 열흘째였다.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과 자유한국당이 갈라서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한국당이 합의안에 이견을 드러낸 것이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28일 기자회견에서도 당시 합의에 대해 “‘검토하자’고 했던 것을 ‘합의’라고 볼 순 없다”며 “활동시한이 남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합의해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 4당은 지난달 17일 3개월간 진통을 겪은 끝에 간신히 의원정수는 유지하면서 지역구 의석을 225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75석으로 늘리되 연동률을 50%로 낮추는 합의안을 도출했다. 이에 한국당은 비례대표제를 아예 폐지하고 지역구 의석만 270명 선출해 의원정수를 줄이는 자체 선거법 개정안으로 맞불을 놨다.
이 즈음부터 여야 4당 사이에 선거제 개편안과 다른 개혁법안을 함께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구상이 구체화됐다. 선거제 개혁이 절실한 야3당과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개혁법안 처리가 시급한 민주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패스트트랙 논의가 구체화되자 선거제는 물론 개혁법안에도 반발해온 한국당은 ‘최악의 빅딜’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순조로울 줄 알았던 패스트트랙 추진은 바른미래당 내부에서 반발이 일면서 제동이 걸렸다. 당 일각에서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검사, 판사, 고위 경찰관 대상 수사에만 한정해 기소권을 부여하자는 절충안을 마련했지만 바른미래당 내에서 지도부와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정면충돌하면서 지난 18일 의원총회 첫 표결 처리는 무산됐다. 한국당과의 갈등도 날로 악화됐다. 지난 20일 패스트트랙 추진을 의회민주주의 파괴로 규정하며 14년 만에 본격 장외 투쟁에 나선 것이다.
끝내 여야 4당은 지난 22일 패스트트랙 지정을 최종 합의하고 23일 각 당 의총을 통해 합의안을 추인했다. 그러나 처리 날짜인 25일이 다가오자 국회는 최악의 대치 상황으로 치달았다. 한국당은 지난 24일 국회의장실을 점거했고, 25일부터 이틀간 국회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이 잇따랐다.
이 과정에서 바른미래당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김관영 원내대표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소속 권은희·오신환 의원이 패스트트랙 지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각각 임재훈·채이배 의원으로 교체하는 사·보임을 단행한 것이다. 이에 바른정당계가 정면으로 반발하며 지도부 사퇴 요구와 함께 한국당과 공동 투쟁을 벌이는 상황까지 빚어지게 됐다.
여의도 주변에서는 결국 여야가 스스로는 이번 대치를 해소하지 못하고, 각종 고소·고발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나와야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란 암담한 전망이 많다.
신재희 김성훈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