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에서 발생한 ‘묻지마 방화·살인’ 참변은 구멍 뚫린 정신질환자 관리 체계의 실상을 드러냈다. 문제의 심각성은 병원 밖 상황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공립 정신의료 인프라 역시 계속해서 축소되고 있다. 그나마 있는 정신병동 여러 곳은 적자병동 딱지가 붙어 의료계의 외면을 받고 있다. 사립병원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 환자의 체계적 관리 등을 제대로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공공의료를 통한 정신질환자 치료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국가차원의 정신의료 인프라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28일 국립정신건강센터 자료에 따르면 2017년까지 국내 정신병원 병상 중 국공립의 비율은 7.2%(6633개)로 사립의 5분의 1 수준이다. 사립은 37.7%(3만5842개)였다. 종합병원(37.4%·3만5773개)과 30개 병상 미만의 정신과의원(3.7%·3486개)을 합하면 사립병원 비율은 40%에 육박한다.
국공립과 사립병원의 격차는 지난 30여년간 꾸준히 벌어져 왔다. 1984년에는 전체 정신병원 병상 중 국공립이 13.4%(1930개), 사립이 7.1%(1022개)였다. 국공립 병상의 비중은 2000년까지 13.0%(7570개)로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사립병상만 35.6%(2만667개)까지 늘어났다. 2011년에는 사립병상 비율이 49.8%(4만6820개)로 최고치였고, 국공립은 2016년에 7.0%(6847개)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나마도 국공립 정신병원 여러 곳은 수익성을 이유로 축소되는 추세다. 최근 경기도 공공정신의료기관인 경기도립정신병원 역시 폐원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174개 병상이 있는 이곳은 지난 36년간 외부 의료재단이 위탁 운영을 해 왔고, 다음 달 7일 위탁 기간이 종료된다. 하지만 월 수천만원의 적자를 내는 병원을 맡겠다고 선뜻 나서는 단체가 없다. 도는 애초 폐원을 결정하다가 최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전국 각 지역에서 공공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의료원조차 정신건강의학과가 아예 없거나 있다가 사라졌다. 전북 남원은 정신건강의학과가 있었지만 의료진과 계약 연장을 하지 않기로 해 최근 사라졌다. 전북 군산의료원은 외래진료만 가능해 입원을 원할 경우 다른 병원으로 전원해야 한다. 경남 산청, 충북 충주, 경기도 파주·안성의료원 등은 정신건강의학과가 없었다. 대형 종합병원에서도 정신병동은 ‘돈 안 되는 병동’으로 찬밥신세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을 비롯한 전국 43개 상급종합병원의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200여개 병상이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공공의료를 강화해 국가가 정신질환을 책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신질환은 급여환자가 많아서 정부가 입원료·식대 등을 정액으로 정해왔다. 어느 병원을 가도 비용은 동일하다. 이 때문에 그동안 정부는 국공립병원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하지만 사립 의존도가 커지면서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동우 인제의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립병원에서는 정신질환자의 입원 수가가 낮고 외래진료로는 수익이 안 나다보니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부유층과 저소득층 환자 간 차별이 발생했고, 시설·생활환경이 열악해지면서 환자들이 입원을 기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어느 정도 질적인 수준을 갖춘 정신병상을 국가차원에서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자는 평생에 걸쳐 치료·관리가 필요하다는 점도 공공의료 확대가 필요한 이유로 꼽힌다. 조성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발병 초기에는 연령이 어려 가족들이 치료를 돕고 경제적인 지원도 가능하지만 나이가 들면 본인의 사회경제적 능력도 없고 가족 역시 돌봐줄 여력이 떨어져 방치될 위험이 많다”고 말했다. 가족에게만 치료의 책임을 지우지 않도록 국가가 관리하는 시스템을 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공립 정신병원 확대는 지역사회에서 치료를 지속해나갈 수 있는 인프라 구축으로 이어진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공공의료기관은 단순히 외래·입원만 담당하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의 전반적인 정신건강 문제, 환자들의 퇴원 후 지역사회 적응 문제 등을 고려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며 “기존의 국공립 정신병원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병상 수도 확대해 공공의료기관 위주의 전국적인 환자관리 네트워크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