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참여국들과 640억 달러(약 74조원) 규모의 프로젝트 협력·합의를 체결하며 소프트파워 확대를 재천명하고 나섰다. 시 주석은 고품질의 일대일로 공동건설 추진을 강조했지만 ‘빚더미 함정 외교’라는 비판을 불식시키긴 힘들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이번 일대일로 포럼에서는 각종 언론 통제와 주먹구구식 행사 진행, 일방적인 시진핑 띄우기 홍보 방식 등 구태를 되풀이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 주석은 27일 베이징 근교 휴양지 옌치후에서 열린 제2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 폐막 기자회견에서 “(일대일로) 기업가 대회에서 총 640억 달러의 프로젝트 협력·협의를 체결했다”면서 “이런 성과는 일대일로 제의가 조류에 순응해 민심을 얻고 있으며 천하에도 유리하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시 주석은 이번 포럼에서 283개 분야에서 실무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하며 “우리는 일대일로의 전방위적 협력을 강화하고 육로와 해상, 공중, 사이버상의 소통을 추진하며 포용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일대일로 정상포럼에는 미국이 불참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40여명의 국가 및 국제기구 지도자들이 참석해 중국의 세 과시에 힘을 보탰다. 또 이번 포럼 공동선언에는 시 주석 외에 37개국 정상이 서명해 2년 전 제1회 포럼 때 29개 서명국보다 크게 늘었다.
시 주석은 미국 등 서방의 비판을 의식한 듯 이번 포럼에서 시장 접근 확대,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수입 증대, 새 자유무역시범구 건설 등 각종 개방조치를 약속했다. 또 부채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방지하고 친환경 발전을 촉진하며, 사업의 투명성을 높일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빚더미 일대일로’ 지적과 일부 프로젝트의 부패 의혹 등 국제적 비판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류성쥔 중국금융개혁연구원 원장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중국은 국제기준 도입을 약속했지만, 국유기업이 투자를 주도하면 투명성 보장은 어려울 것”이라며 “중국은 오랫동안 지식재산권 보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번에도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은 이번 포럼에서 엄격한 언론 통제, 일방적인 행사 진행 등으로 소프트파워 능력에 의문을 갖게 했다고 SCMP는 지적했다. SCMP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포럼 관계자들에게 행사 내내 어떤 언론단체에도 일대일로 포럼에 대한 계획을 말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중국 매체들은 선전부로부터 포럼 기간 미·중 무역전쟁 같은 민감한 사안은 논평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는 등 엄격한 언론 통제도 이뤄졌다. 또 명확한 일정이 알려지지 않아 참석자들은 몇 시간씩 기다리다 갑자기 행사가 시작되자 서둘러 자리를 잡아야 했다. 포럼을 위해 베이징의 많은 도로들이 폐쇄되면서 극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렸고, 27일 항공편도 무더기 결항 또는 연착되면서 큰 소동이 빚어졌다. 포럼에 관여한 한 인사는 “이번 포럼은 중국을 위한 하루짜리 홍보 쇼였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의 폐막 기자회견을 앞두고는 행사장 좌석을 채울 수 없게 되자 중국 당국자들이 뒤늦게 전화로 기자들에게 행사에 참석해 달라고 ‘필사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특히 40명의 세계 지도자들이 원탁회담을 한 27일 중국 TV들은 시 주석의 발언만 특집으로 다루고 다른 참가국이 발언하기 전에 생방송을 중단했다고 SCMP는 지적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