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혁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등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치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거대 양당의 대결 구도는 부각되는 반면 군소 정당의 존재감은 더욱 약해지고 있다. 제3지대에서도 옛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출신 인사들과 옛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패스트트랙을 둘러싸고 확연하게 갈라지며 싸우고 있다. 거대 양당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유리한 프레임을 짜기 위해 극한 대치를 지속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여야는 주말인 28일에도 여론전을 펼치며 극한 대치를 이어갔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지정은 법안 통과를 강제하는 게 아니라 대화와 협상을 강제하는 건데 한국당은 폭력과 불법으로 국회를 무법천지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도 맞불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패스트트랙을 저지했을 뿐 의회를 지켰다”며 “헌법을 지키기 위한 저항권은 민주시민의 절대적 권리”라고 맞받아쳤다. 또 “패스트트랙은 법안 심사 기간을 못 박아 결국 야당의 법안심사권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본관 3층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을, 한국당 의원들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회의실로 사용된 본관 4층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을 각각 본진으로 삼아 조를 짜서 비상대기했다.
반면 양당과 달리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군소 정당들은 당 차원에서 투쟁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 원내 3당인 바른미래당은 패스트트랙에 반대하는 바른정당계와 패스트트랙을 지지하는 대다수 민주당 출신 국민의당계로 사실상 양분됐다.
이처럼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한 대결 구도가 심화하는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둔 각 당의 전략과도 무관치 않다.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합의에서 사실상 ‘왕따’ 상태였던 한국당은 투쟁 무드가 본격화되면서 정국의 중심에 다시 섰다. 당 관계자는 “패스트트랙 정국으로 한국당과 나머지 여야 4당 간 1대 1 구도가 되면서 문재인 정권에 비판적인 표심(票心)도 한국당으로 몰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처럼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와 합동 투쟁을 거치면서 보수 통합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진 상태다. 다만 바른정당계 좌장인 유승민 의원은 지난 27일 “쉽고, 편하고, 계산기 두드려 이익이 많은 길은 안 간다”며 한국당행을 일축했다.
민주당은 표면적으로는 바른미래당 등 야3당의 협력 속에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처리할 적기라는 점을 내세워 물러서지 않고 있다. 특히 여야 극한 대치가 길어질수록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내세운 한국당을 ‘반(反)개혁세력’ ‘무법자’ 이미지로 몰아세우면서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도 있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결국 거대 양당이 총선을 앞두고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를 만들기 위해 합리적 대안 마련이나 중재보다 극한 대치를 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