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세대’ 일왕 등장 초읽기, 우경화 눈 감나 눈 뜨나

입력 2019-04-29 04:01
5월 1일 새 일왕에 오르는 나루히토 왕세자와 마사코(왼쪽) 왕세자비가 지난해 9월 일본 규슈 지역에서 발생한 홍수 피해주민들을 만나 위로하고 있다. 왕세자 부부는 일왕 즉위를 앞두고 지난해부터 부부동반 공식활동을 늘려왔다. 일본 궁내청 홈페이지

일본에서 5월 1일 ‘레이와(令和)’ 시대 개막과 함께 나루히토(德仁·59) 왕세자가 왕위에 오른다. 일왕은 1868년 메이지(明治) 시대 이후 신격화와 함께 통치권자, 군 통수권자로서의 막강한 권한을 가졌지만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1946년 새 헌법에 ‘국정 권한을 전혀 갖지 않는다’는 조항이 명문화되면서 상징적인 존재로만 규정돼 왔다.

최근 일본에선 아키히토 일왕 퇴위와 나루히토 즉위가 동시에 이뤄지면서 사회적으로 축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일본 역사에서 왕이 생전에 퇴위하는 것은 202년 만이다.


나루히토는 30일 퇴위하는 아키히토(明仁·86) 일왕과 미치코(美智子) 왕비의 장남이다. 형제는 동생 후미히토(文仁) 왕자, 사야코(淸子) 공주가 있다. 역대 왕족들이 어릴 적부터 부모와 떨어져 양육된 것과 달리 나루히토 남매는 왕실 최초의 평민 출신 왕비인 어머니의 교육철학 덕분에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 살았다.

상류층 학교로 유명한 가쿠슈인(學習院)에서 유치원부터 초·중·고등부 및 대학(역사학 전공)까지 마친 나루히토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도 2년간 유학했다. 가쿠슈인 대학원에 진학해 교통사와 물류사로 박사 과정까지 마쳤다. 이전 왕족들이 주로 생물학이나 공학을 전공했던 것과 차이가 난다.

나루히토의 취미는 등산과 조깅이다. 비올라 연주도 수준급이다. 매년 12월 가쿠슈인 동문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에 참여한다. 2004년 7월 도쿄에서 열린 ‘한·일 우호 특별기념 콘서트’에서는 피아니스트로 나선 정명훈과 협연을 했다.

왕세자로 조용한 행보를 보여온 그에게 세간의 관심이 쏟아진 것은 93년 마사코(雅子) 왕세자비와의 결혼식 때다. 마사코 왕세자비는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한 재원이다.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영어, 러시아어 등 5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나루히토는 86년 일본을 방문한 스페인 공주 환영식에서 마사코를 처음 만난 뒤 호감을 가졌다. 하지만 외교관으로 활약하고 싶었던 마사코는 왕세자의 구혼을 계속 거절했다. 결국 일왕 부부를 대신해 궁내청이 92년 외무성을 통해 마사코 집안에 혼담을 다시 넣었다. 당시 외무성 차관이 마사코의 아버지였다. 마사코는 그해 말 “왕실 외교에서 역할을 해 달라”는 왕세자의 구혼을 받아들였다.

나루히토 일본 왕세자가 지난해 12월 17번째 생일을 맞은 딸 아이코 공주와 함께 책자를 보고 있다. 일본 궁내청 홈페이지

나루히토는 마사코와 결혼한 이후 인기가 떨어졌다. 마사코 왕세자비가 적극적으로 왕실의 공무에 나서지 않고, 아들이 아닌 딸 아이코(愛子) 공주만 있는 것도 인기 하락 원인으로 꼽힌다. 2006년 동생 후미히토 왕자가 아들 히사히토를 낳은 뒤 보수파 사이에선 왕세자 교체설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일본 왕실 전범은 남자 후계자만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새 일왕 즉위 이후 왕위 계승자는 딸이 아니라 동생이다. 한동안 여성 후계자의 일왕 승계 논의가 있었지만 히사히토가 태어나면서 중단됐다. 히사히토는 아버지 후미히토 다음 순위의 왕위 계승자다.

하지만 최근 즉위를 앞두고 나루히토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그가 아내에 대한 외부의 공격을 묵묵히 견뎌내면서 공무를 빈틈없이 해냈기 때문이다. 마사코 왕세자비가 예전보다 공무를 늘려가는 것도 그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마사코 왕세자비는 지난해 12월 생일을 맞아 낸 성명에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불안하다. 하지만 국민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고 밝혔다.

고령화 추세 속에 왕실에 왕위를 계승할 남자가 나루히토 이후 3명밖에 남지 않은 것도 문제다. 3명 가운데 1명은 아키히토 일왕의 동생이자 나루히토의 삼촌인 80대의 마사히토 왕자다. 앞으로 후미히토가 왕위를 물려받는다고 해도 70대 후반이 넘는 고령에 즉위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우려를 자아낸다. 이런 논란과 맞물려 일본 언론은 새 일왕 즉위 이후 머지 않은 시기에 여성 후계자의 일왕 즉위 문제, 즉 아이코 공주의 승계 문제가 다시 논의될 것으로 예상한다. 나루히토의 일왕 즉위와 맞물려 일본에선 국가 상징으로서 일왕의 역할 등을 재검토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그렇다면 나루히토의 역사관과 정치색은 어떨까. 아키히토 현 일왕은 평생 전쟁에 대한 반성과 평화를 강조하며 일본 정권의 우경화 행보를 소극적이나마 견제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아들 나루히토는 아직까지 뚜렷한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2015년 “전쟁의 기억이 옅어지려 하는 요즘, 겸허히 과거를 돌아보는 것과 함께 전쟁 체험세대로부터 이를 알지 못하는 세대에게 비참한 체험이나 일본이 걸어온 역사를 올바르게 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한 발언이 거의 전부다. 다만 그동안 아버지의 뜻과 행동을 이어가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히면서 “상징으로서 책무를 수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전후 세대’인 나루히토가 비록 상징적인 존재라는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본의 확연한 우경화 움직임 속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되는 이유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