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위 스무 살 안재현, 세계 탁구 ‘반란 스매싱’

입력 2019-04-28 19:18
한국 탁구 대표팀의 스무 살 막내 안재현이 25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2019 국제탁구연맹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단식 16강전에서 일본의 탁구 신동 하리모토 도모카즈(16·세계 랭킹 4위)를 4대 2로 꺾은 뒤 양팔을 들어올리며 환호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한국 남자탁구 대표팀의 막내는 겁이 없었다. 세계 랭킹 157위로 무명이었지만 생애 처음으로 만난 세계 각국의 스타 선수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기량을 뽐냈다. 스무 살의 ‘탁구 신성’ 안재현은 세계선수권 데뷔 무대에서 강호를 잇달아 격파하며 한국 남자탁구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메달리스트가 됐다. 최연소 남자단식 메달리스트의 깜짝 탄생은 한국 탁구에 세대교체를 예고했다.

안재현은 27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2019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탁구선수권대회 4강전에서 16위 마티아스 팔크에 3대 4로 패하며 동메달을 확정지었다. 아쉽게 결승에 진출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번 대회 한국 대표팀에 유일한 메달을 안겼다. 약관의 소년은 21살 때 1991 지바 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던 김택수 남자 대표팀 감독을 넘어 남자단식 최연소 메달리스트가 됐다. 한국 대표팀 가운데 세계선수권 첫 출전에서 메달을 목에 건 최초의 선수기도 하다.

157위 안재현의 4강 진출은 파란이었다. 본선 128강에 직행하지 못해 이틀 먼저 예선전부터 치러야 했다. 그러나 본선에서 홍콩의 웡춘팅(14위), 일본의 16세 탁구 천재 하리모토 도모카즈(4위) 등 최상위 선수를 연달아 격파하며 재능을 입증했다. 현장에서 그를 지켜본 해외 탁구 관계자들은 “150위권 선수가 이렇게 오른 것은 기적”이라고 놀라 웅성였다.

안재현은 8강에서 대표팀 선배이자 에이스인 장우진(10위)과 맞붙어 4대 3으로 승리하기도 했다. 지난해 ITTF 코리아오픈 3관왕과 그랜드 파이널스 복식 우승을 차지한 장우진의 노련함도 안재현의 패기를 꺾지 못했다. 형들은 반란을 일으킨 막내를 한없이 예뻐하면서도 동료로서 존중했다. 대표팀의 고참 이상수(6위)는 “내가 맏형이지만, 막내든 아니든 지금 잘하는 선수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 탁구의 새 역사를 쓴 안재현은 “우진이 형을 이기고 올라갔는데 4강에서 져서 죄송하다. 이길 수 있는 찬스가 있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죽지 않고 “다음 대회에서는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 감독은 “안재현이 제 예상을 빗나갈 정도로 좋은 탁구를 했다”며 한국 탁구의 희망을 봤다고 했다.

안재현을 비롯한 탁구 유망주들은 세대교체의 기수로서 2020 도쿄올림픽 전망을 밝게 한다. 지난해 12월 전국종합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고교 1학년생 조대성(17)이 실업팀의 성인 선수들을 연이어 꺾고 최연소 준우승을 차지했다. 중학생이던 2017년에는 같은 대회에서 당시 세계 랭킹 10위였던 이상수를 이기기도 했다.

여자부에서는 15살의 신유빈이 성인 무대를 준비한다. 신유빈은 2009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탁구 신동으로 존재를 알린 후 주니어 대표팀에서 꾸준히 기량을 갈고닦고 있다. 지난해 나란히 대한탁구협회 우수선수상을 받은 조대성과 신유빈은 2월 말 열린 세계탁구선수권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지만 아쉽게 기회를 놓쳤다. 이들은 현재 국가대표 상비군으로서 도쿄올림픽 등 국제 대회를 목표로 훈련 중이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