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3 부동산 대책 발표 한 달여가 지난 지난해 10월 15일, 시중은행의 ‘비대면 전세자금 대출’은 멈췄다. 정부가 ‘다주택자 전세 대출’을 옥죄면서 배우자의 주택 보유 여부, 소득 등이 확인되도록 시스템을 고쳐야 했기 때문이다. 보름에서 한 달가량 걸리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는 홀로 비대면 전월세 대출을 정상 운영했다. 어떤 차이 때문이었을까.
경기도 판교 카카오뱅크 사옥에서 지난 24일 만난 비대면 전월세 상품 기획자 백희정·박신건 매니저는 “간절함과 고민의 힘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카카오뱅크는 9·13 대책에 맞춰 미리 준비한 배우자 주택 확인 시스템 등을 즉시 적용했다. 다른 은행이 ‘대출 중단’ 사태를 겪을 때도 ‘영업 중’ 간판을 내걸었다. “정부 정책에 따른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전세 대출의)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었다. 9·13 대책 발표 다섯 달 전인 4월부터 여러 시나리오에 맞춰 시스템을 만들어뒀다.”(박 매니저)
지난해 1월 출시된 카카오뱅크의 전월세 대출은 ‘비대면 대출’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입소문’에 ‘온라인 후기’까지 퍼지며 판매 45일 만에 대출 잔액 1000억원을 넘어섰다. 9·13 대책 이후 증가폭은 더 가파르게 치솟았다. 올해 2월 잔액 1조원을 넘어섰고, 지난달 말 기준으로 1조1853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3개월간 월평균 14% 상승세다.
카카오뱅크는 은행권 경쟁을 유발하기 위해 투입된 ‘메기’였다. 오프라인 지점도, 직원도 없었다. 하지만 작은 체구는 강점이었다. ‘지점’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박 매니저는 “모바일 대출을 받다가 오류가 나면 은행들은 ‘가까운 지점에 문의하세요’라고 한다. 우리는 그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모든 시스템을 더 편리하고 직관적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뱅크는 기존 은행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걸 바꾸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먼저 대출 한도를 알아보기 위해 고객이 입력해야 하는 항목을 10개 이하로 줄였다. 오타를 내면 바로 ‘붉은 글씨’로 알려줬다. 중도상환수수료도 받지 않는다. 이런 ‘사소한 배려’가 호응을 끌어냈다. 백 매니저는 “기존 은행들이 ‘고객이 직접 다 입력하시라’는 관점이었다면 우리는 ‘기본만 입력하면 나머지는 저희가 판단하겠다’는 자세였다. 항상 고객 관점에서 필요하다고 느낄 만한 걸 제공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카카오뱅크의 비대면 대출은 어느새 은행권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기존 은행들은 전월세 대출을 넘어 주택담보대출, 기업대출 등으로까지 ‘비대면’ 적용을 시도 중이다. 다만 카카오뱅크도 쉽게 물러설 기세는 아니다. 백 매니저는 “비대면 대출 시장을 함께 넓혀나갈 수 있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은행보다 인력이나 규모는 작지만 한 발씩 앞서갈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성남=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