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를 공식 언급하면서 정부의 비핵화 구상이 터닝포인트를 맞고 있다. 남·북·미 3자 협상이 다자 체제로 전환된다면 정부가 추진하던 정상외교 속도전 대신 다자 실무협의가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청와대는 주변국 동향을 면밀히 체크하면서도 다자 체제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북한이 러시아를 끌어들인 것은 막강한 미국의 주도권을 흔들기 위한 전략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안한 6자회담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동의한다는 뜻을 밝히지 않았다”며 “정부는 지금까지처럼 남·북·미 중심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6자회담을 완전히 배제하고 가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6일 김 위원장과 회담한 뒤 북한 체제 보장을 위한 6자회담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에 2008년 이후 11년간 개최되지 않아 사문화됐던 6자회담이 재개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청와대가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청와대는 변수가 많아질수록 지난 2년간 이뤄진 남·북·미 3자 정상의 합의와 비핵화 공감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또 이미 실패한 6자회담 틀을 다시 불러오는 것 자체가 실패라는 인식도 갖고 있다. 김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해 판을 키운 것 역시 다자 체제로의 전환이라기보다 미국 주도권 흔들기로 해석한다. 정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막강한 우월적 지위를 체감했을 것”이라며 “미국의 독주 방어, 안전판 확보 등을 위해 러시아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북·미 3자 간 협상 역시 장기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북한은 4·27 판문점선언 1주년 행사 참여 등 청와대의 모든 제안에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통일전선부장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에서 장금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으로 교체한 전후로 국가정보원의 대북 채널도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국정원 라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남북 간에는 이 외에도 공개할 수 없는 다양한 소통 채널이 있다”며 “(남북 관계는)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다소 시일이 걸리더라도 남북 주도의 비핵화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판문점선언 1주년 영상 메시지에서 “새로운 길이기에, 또 다함께 가야 하기에 때로는 천천히 오는 분들을 기다려야 한다”며 “때로는 만나게 되는 난관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함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큰 강은 구불구불 흐르지만 끝내 바다에 이른다”고 강조했다. 남북과 북·미 대화가 교착된 상황에서 무작정 서두르지만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청와대는 지속적인 물밑접촉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우선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