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밥그릇에 돌변한 동물국회… 정치의 실종

입력 2019-04-29 04:01
일하지 않던 식물국회, 선거제 불거지자 갑자기 육탄전…
협상 테이블 열어 정치 복원에 나서는 것이 순리다


당황스럽다. 우리 국회의 어느 구석에 이런 에너지가 숨어 있었나 싶다. 몇 달씩, 몇 년씩 법안을 잠재우며 일하지 않던 식물국회가 육탄전을 불사하는 동물국회로 돌변했다. 평소 회의장마다 빈자리를 만들어내 온 의원들이 지도부의 문자메시지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몸을 던졌다. 한쪽에선 “좌파 독재의 야만적 폭정”이란 섬뜩한 비난을 쏟아냈고 다른 쪽에선 “국정농단 부역세력의 광기”라는 독기 어린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지금까지 아무리 민감하고 중차대한 법안도 20대 국회의원들에게서 이렇게 역동적인 모습을 끌어내지 못했다. 의견이 첨예하게 충돌했던 유치원 3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릴 때도, 철학이 정반대로 달랐던 경제 법안을 다룰 때도 이런 치열함은 없었다. 이번 사안이 예외적 현상을 부른 건 문제의 패스트트랙 안건에 선거제가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거제 개편안은 이들이 가진 의원직의 앞날과 직결돼 있다. 한국당 의원들이 갑자기 투사가 되고 여야 4당이 뻔히 보이는 무리수를 동원한 배경에는 결국 밥그릇이 있었다.

양측은 휴일에도 군사작전 하듯 대치를 이어갔다. 비상대기조를 편성해 회의장을 지켰고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면 소집령이 내려졌다. 폭력사태 책임공방은 가열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 20명을 고발하자 한국당은 민주당 17명을 맞고발했다. 육탄전은 이번 주에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원내대표는 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안의 패스트트랙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고 공언했고, 한국당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이 저지되는 그날까지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행태를 정치라 부를 수 없다. 국민을 대신해서 논쟁은 치열하게 하되 타협을 통해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정치다. 논쟁의 장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국회는 몸싸움만 벌이고 있다. 이번 사태는 선거제를 넘어 한국 정치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정치가 실종된 국회, 정치라 말할 수 없는 정치판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는지, 유권자는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때가 됐다.

여야 모든 정당이 정치 복원에 나서기 바란다. 패스트트랙에 올리려는 4개 법안은 모두 해묵은 문제이며 당위성을 갖고 있다. 게임의 룰인 선거제는 합의하지 못했던 적이 없고 검찰 개혁은 각 정당이 다 외쳤던 것이니 분명히 접점을 찾을 수 있다. 패스트트랙 지정은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하는 절차다. 능동적이고 탄력적으로 협상에 임할 것을 약속하고 패스트트랙에 올려 마주앉는 게 이성적인 해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