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한국 경제가 -0.3%라는 충격적 경제성장률을 내놓은 이후 한국은행 통화정책을 바라보는 시선이 뜨거워지고 있다. 한은이 제시한 연간 경제성장률(2.5%)을 달성하려면 ‘기준금리 내리기’가 불가피하다는 인하론이 대두된다. 반면 기준금리 인하가 기업의 설비투자 증가 등으로 연결될지 의문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시장에 풀린 돈이 소비·투자를 자극하지 못하고 안전자산에 쏠리는 ‘유동성의 함정’을 지목하는 것이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분기 경제성장률 부진의 방아쇠는 ‘설비투자 절벽’이었고, 이는 결국 중소기업들이 현재 금리 수준을 부담스러워한 데 따른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제시되고 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고용의 84%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직접자금조달 시장으로 접근이 제한돼 대부분 은행 대출에 의존한다”며 “실질금리 인상에 따른 설비투자 감소가 시장 예상보다 커졌다”고 진단했다. 외환위기 당시 수준으로 고꾸라진 설비투자는 반도체 업황의 문제만은 아니며, 기업 전체의 문제라고 강 연구원은 강조했다. 설비투자가 경제성장률에 기여하는 정도가 높아지려면 결국 실질금리가 낮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NH투자증권은 애초 내년 1월로 예상하던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오는 11월로 앞당겼다.
추가경정예산 등 정부의 확장적 재정 지출만으로 소비 활성화, 경기 반등에 성공하기에 불충분하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폴리시믹스(정책 조합)’ 차원에서 기준금리 인하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추경이 발표되긴 했지만 현재 경기 하강 속도가 빨라 대처하기엔 크게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ING그룹의 로버트 카넬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한은이 2분기에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추가 지원을 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는 논평을 내놨다.
한국처럼 성장 문제에 봉착한 각국의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활용하는 중이기도 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매파(긴축 선호)’ 기조였던 호주 인도 영국 뉴질랜드 등이 ‘비둘기파(완화 선호)’로 돌아섰다. 기준금리 인상 행진을 이어가던 미국도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다. 미·중 무역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의 불확실성이 수요 부진과 교역 감소로 이어지면서 유동성 공급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기준금리를 내리는 게 꼭 정답일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연 1.75%인 현재 기준금리는 실질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합한 명목 경제성장률과 비교할 때 아직 낮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기준금리로도 이미 ‘완화 기조’라는 해석이다.
하 교수는 ‘유동성의 함정’도 언급했다. 그는 “기준금리를 인하했을 때 과연 투자가 늘어날 것인가 생각해 본다면, 한국 경제의 특성상 부동산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돈을 풀어도 소비·투자 활성화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부동산 등 안전자산으로만 흘러가면 통화정책의 효과는 없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한국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도 발목을 잡는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누그러졌다고는 하지만 총량의 누증은 여전히 심각하고, 다중채무자·저소득층 등 ‘고위험군’ 대출은 질적으로 나빠지고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