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27일 오후 2시 강원도 철원의 옛 노동당사 앞. 수천명의 시민들이 이곳에서부터 소이산 입구까지 2㎞를 길게 늘어섰다. 손에 손을 맞잡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인간띠’를 만들기 위해서다. 행사는 인천 강화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평화누리길 500㎞ 곳곳에서 열렸다. 노동당사 앞에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총회장 김충섭 목사) 소속 교인들과 평화어머니회, 청주와 문경 YMCA를 비롯한 일반 시민들이 모였다.
시민들은 한반도기를 흔들며 대로를 따라 각자 맡은 구역으로 힘차게 걸어갔다. ‘건너오세요’라며 길 안내를 하는가 하면 ‘하나 둘 셋’ 단체 촬영도 했다. 노동당사 앞 단상 위에 오른 이현종 철원군수가 “철원은 평화를 준비하는 곳”이라며 “좋은 시간 보내세요”라고 짧게 인사하자 시민들이 손뼉을 쳤다. 인간띠를 완성하기로 한 시간인 2시 27분이 몇 분 앞으로 다가오자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그 순간을 기다렸다. 경기도 양평에서 온 권도윤(11) 군은 “아침 일찍 일어나 조금 힘들었지만, 지금은 기분이 좋다”며 “통일을 해서 친구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약속한 순간이 되자 사람들은 10초 정도 침묵했다. 이어 일제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손에 손을 맞잡고 팔을 흔들며 몇몇 이들은 눈물을 흘렸다. ‘북녘땅에도 들리게 하자’는 사회자의 격려에 노랫소리는 더 커졌다. 수천명이 촘촘히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노랫소리를 제외하고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어 ‘평화통일 만세’를 삼창했다.
고향도 소속도 나이도 다른 수많은 사람이 이 순간만큼은 서로 맞잡은 손이 북한까지 이어지길 염원했다. 대전에서 온 김선건(74)씨는 가슴이 설레 새벽 3시에 일어났다고 했다. 그는 “모르는 이들과 손을 맞잡는 순간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며 “남북이 하루빨리 자유롭게 왕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손 잇기는 강화 김포 고양 파주 연천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 등에서도 이뤄졌다. 대회를 주관한 DMZ평화인간띠운동본부(대표 이석행)를 중심으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소속 교회들도 곳곳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인간띠를 잇기 직전인 낮 12시, 노동당사에서 10분 거리인 백마고지 위령비 앞에서는 ‘6·25 한국전쟁 희생자 추모예배’가 열렸다. 목회자와 성도들은 “주님께서 이제는 이 민족 가운데 피 흘림과 상처가 아닌 평화와 사랑만이 가득하게 해 달라”며 예배를 시작했다.
이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회개했다. 곽영준 철원교회 목사는 “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외면하며 살아왔다”며 과거를, 이종환 향원교회 목사는 “서로에 대한 화해의 의지가 부족했다”며 현재를, 이락재 대광교회 목사는 “평화를 이루고 하나 되기보다 분단의 오랜 고착화에 익숙해졌다”며 미래를 회개했다.
전쟁으로 희생됐던 민간인과 외국인 참전 희생자, 전쟁의 현장에 있던 군인들을 위한 기도가 이어졌다. 감리교군선교회 이사장인 윤보환 목사는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원수로 만들지 않았다”며 “휴전선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인간띠가 동서가 아니라 한라에서 백두라는 남북으로도 이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한다”고 설교했다.
성도들은 각자의 고백을 다짐한 기도문을 작성해 봉헌함에 넣었다. 남북 평화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하나님께 전하기 위해서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새벽 6시에 일어나 찾아왔다는 임주홍(63·여) 새생명감리교회 권사는 “이 땅에 평화통일을 이루게 해 주시고 우리 후손들이 하나님 안에서 영원토록 평화롭게 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문을 작성했다. 그는 “내 기도가 고국을 위해 희생한 이들과 하나님께 전해졌으면 좋겠다”며 웃어 보였다.
인간띠 잇기는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이 구소련 지배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89년 시작했다. 당시 200만명이 손을 맞잡고 620㎞를 늘어섰다. 1991년 이들 국가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독립을 이뤘다.
철원=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