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돈 안된다?… 어린이예술단의 비극

입력 2019-04-28 19:26
지난해 말 예술의전당 어린이예술단 정기공연 ‘가자! 산타마을로!’는 티켓 신청 1시간 만에 전 좌석이 동나면서 화제가 됐다. 예술의전당 제공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의전당이 유일한 전속예술단체인 어린이예술단을 창단 3년 만에 없애기로 했다. 어린이예술단은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초등학생 80여명이 활동해왔다. 공공기관의 졸속 예술정책이 동심을 멍들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영방송인 KBS 역시 올해 KBS어린이합창단 단원 모집을 보류하기로 해 논란이다.

예술의전당은 28일 “어린이예술단을 운영한 결과 예술적 시너지가 크지 않았고, 예산 마련도 쉽지 않았다”며 “서초구 등 인근 지역 어린이가 주로 단원으로 활동해 사회공헌 기능도 크지 않다고 판단해 폐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예술의전당은 창단 당시 이 예술단이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예술 활동의 기회를 주고 화합과 소통의 문화에 기여하는 공익사업이라고 설명했다. 1억5000만원 안팎의 운영자금은 예술의전당과 후원회가 담당해왔다. 초등학교 3~6학년으로 구성된 어린이예술단은 국악, 기악, 합창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정기공연 등 연간 10여회 공연을 했다. 지난해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한글날 행사 무대에 서 갈채를 받았다.

2016년 창단 준비 공연부터 활동해온 박솔범(12·고양 화수초6)군은 “예술단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정이 많이 들었는데 갑자기 없어진다고 해서 슬프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은 예술단 측에 이달 중순 폐단 확정을 통보했다. 이에 따라 어린이예술단은 다음 달 4일 어린이날 전날 공연을 끝으로 짧은 역사를 마감하게 됐다.

근시안적 행정이라는 비판에 대해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미리 여러 가지를 고려하지 못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안팎에서는 전 정권에서 임명한 전임 사장이 시작한 사업이기 때문에 폐지되는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어린이예술단 소속 어린이와 학부모들은 재고를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공연계 전문가는 “어린이 예술정책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세워져야 하는데 전임자가 시작했다는 이유로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KBS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올해 예정됐던 제27기 KBS어린이합창단 단원 공모를 유예한다”고 공지했다. 1947년 창단된 이 합창단은 소프라노 신영옥 등이 활동했던 유서 깊은 합창단으로 2년마다 단원을 선발해왔다. 외부에서는 폐단 수순이라는 관측이 있지만 KBS 측은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한 학부모는 “공공기관이 예술단을 만들었다가 몇 년 만에 없애고 정기적으로 하던 단원 모집을 공개 논의 없이 중단하는 것은 실망스럽다”고 꼬집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