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육상이 몰락했다. 세계 대회가 아닌 아시아육상선수권에서조차 사상 처음으로 단 한 개의 메달도 따내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 이웃 일본의 1%도 되지 않는 선수 숫자와 유관 단체의 무관심이 빚어낸 참극이라는 지적이다.
25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끝난 2019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엔 43개 종목에 129개의 메달이 걸렸다. 그런데 한국은 금메달은커녕 동메달 한 개도 따내지 못했다. 1973년 시작해 이번 대회에서 23회째를 맞은 이 대회에서 한국이 단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 한국 육상의 가장 낮은 성적은 2013년 인도 대회 때의 동메달 2개였다.
한국은 마지막 날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여자 100m 허들의 정혜림(32·광주광역시청)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었지만 허들 결선에서 13초50을 기록해 8명 가운데 7위에 머물렀다.
반면 이번 대회에서 오일 달러로 무장한 바레인이 금메달 11개, 은메달 7개, 동메달 4개 등 총 22개의 메달을 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중국이 금 9개, 은 13개, 동 7개를 수확해 종합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이 금 5개, 은 4개, 동 9개를 가져가 뒤를 이었다.
한국 육상이 몰락한 가장 큰 이유는 비인기 종목으로서 저변 확대가 전혀 이뤄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육상은 모든 스포츠의 기초가 되는 종목이다. 생활체육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에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은 육상을 생활스포츠화하며 활발한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며 선수를 뽑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다. 실제 대한육상연맹에 따르면 초등학교를 제외한 한국의 육상 등록 선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3637명에 불과하다. 일본(42만3581명·2016년 기준)과 비교해 0.9%라는 참담한 수준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 심하다. 중학교 육상 선수의 경우 한국이 1479명으로 일본(19만8314명)의 0.7%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 실업팀 단거리 감독은 “국내 대회에서 한국 단거리는 두 개조도 구성하기 힘들지만 일본은 35조 이상이 뛴다”고 소개했다. 일선 중·고교 육상 감독들은 유망주를 발견하고도 비인기종목이라는 이유 등으로 부모의 반대가 극심해 팀을 구성하기조차 힘들다고 토로한다.
육상 발전에 책임이 있는 육상연맹의 무성의한 태도에 대해서도 비난이 나온다. 한 코치가 두 세 개 종목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해당 종목과 별 연관성이 없는 종목 출신 코치가 선수를 지도하는 경우도 많다. 일례로 현재 멀리뛰기와 3단뛰기, 혼성경기(트랙과 필드를 함께 하는 경기)의 국가대표 코치는 혼성경기 출신 한 명이 맡고 있다. 또 다른 실업팀 육상 감독은 “지금도 한국 육상은 불모지이지만 선수가 없고, 세대교체도 잘 이뤄지지 않아 앞으로가 더 암담하다”며 “대한체육회와 육상연맹이 머리를 맞대고 이 난관을 수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