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서 지난 21일 발생한 연쇄 폭탄 테러 이후 무슬림 사회를 향한 분노가 점점 커지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곳곳에서 무슬림을 폭행하고 그들의 집과 상점을 부수고 있다. 겁에 질린 무슬림 시민 수백명은 살아남기 위해 삶의 터전을 떠났다.
뉴욕타임스는 무슬림인 아우란제브 자비가 최근 두 자녀와 함께 파키스탄 북부 항구도시인 네곰보에서 성난 군중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당했다고 25일 보도했다. 친구 집에 머물던 자비는 쇠몽둥이를 든 군중에게 둘러싸였다. 그는 당장이라도 집 안에 뛰어들 듯 소리를 질러대는 군중을 피해 밖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곧 붙잡혀 두 아이와 함께 구타당했다.
연쇄 폭탄 테러로 주민이 100명 넘게 숨진 네곰보에서는 마을 곳곳에서 무슬림 주민이 구타당하고 집과 상점이 공격받고 있다. 특히 이슬람국가(IS)와 내셔널타우힛자맛(NTJ)이 지난달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사원 테러의 복수를 위해 이번 일을 벌였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기독교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슬람사원들은 테러 피해자 가족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기도 알림 방송을 중단했다. 무슬림 사회는 희생자를 애도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장례식장 자원봉사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들 역시 이번 테러에 충격받고 함께 슬퍼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지적했다.
하지만 추가 폭발이 이어지면서 이런 노력도 허사로 돌아가고 있다. 콜롬보에서 동쪽으로 40㎞쯤 떨어진 푸고다 지역 법원 인근에서 25일 폭발이 발생했다. 사상자는 없었지만 기독교인들은 다시 한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스리랑카 성당은 아예 당분간 모든 미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네곰보 지역의 무슬림 수백명은 겁에 질려 도시를 탈출했다. 피난버스에 탑승한 한 시민은 로이터통신에 “테러 발생 후 집주인에게 쫓겨나 갈 곳을 잃었다”고 말했다. 겁에 질려 이슬람사원으로 몸을 피했다가 그대로 경찰에 보호 요청을 한 이들도 있었다. 버스에 오른 무슬림 대부분은 수니파 등 이슬람 주류로부터 이단 취급을 받는 파키스탄 출신 아마디야 공동체 소속이다.
정작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IS에 도움을 받아 테러를 자행한 NTJ 테러범 중에는 스리랑카 주류 인사도 다수 포함됐다. 스리랑카 재벌가의 두 아들이 자살폭탄 테러에 동참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이들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향신료 수출업체 이샤나는 테러에 사용된 폭탄 재료를 공급한 구리 공장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스리랑카는 이미 종교와 민족 등의 이유로 26년 동안 내전을 겪었다. 내전이 끝난 2009년 이후로는 불교 강경론자들이 기독교와 이슬람 등 소수파를 억압했다. 이슬람과 기독교는 최근 10년간 서로의 아픔을 달래며 연대해 왔지만, 이번 사건으로 두 종교마저 반목하면서 스리랑카 사회의 분열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