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구 창동역 인근의 한 교육원. 이웃 주민들에게 ‘엄마할머니’라 불리는 김채경(49)씨가 장애인활동보조인 교육을 받는 곳이다. 지난 23일 오후 40여명이 빼곡하게 들어찬 강의실 한편에서 분홍색 후드티셔츠를 입은 채 강사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 김씨가 눈에 띄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내리 8시간 동안 이어지는 강의를 듣느라 피곤할 법도 한데 강사가 종강을 알리자 김씨는 지친 기색도 없이 부리나케 지하철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교육원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어린이집으로 딸 박주연(6·뇌병변2급)양을 데리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전 내내 재활치료를 받은 주연이는 어린이집 교사 품에 잠들어 있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귀에 익은 엄마의 노랫소리가 들리자 주연이가 번쩍 눈을 뜨며 “마아~(엄마)” 하고 입을 열었다.
2.3㎏의 가냘픈 몸으로 태어난 주연이는 생후 열흘 만에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19세에 주연이를 낳은 엄마 아빠는 “한 달만 맡아 달라”는 말을 남기고 훌쩍 떠나버렸다. 김씨에게 손녀와 할머니로서의 인연이 딸과 엄마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생후 50일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밤낮 가리지 않고 경기를 일으키는 통에 주연이를 업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는 나날이 이어졌다. 정밀검사 후 받아든 결과지에는 미세결실증후군이란 병명이 적혀 있었다. 염색체 이상으로 뇌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희소질환이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지만 주연이는 스스로 걷지도 먹지도 못한다. 김씨는 “지난해 말부터 밀알복지재단 지원으로 언어인지, 감각통합 치료를 받으면서 표현하는 능력이 부쩍 좋아졌다”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세 살 때까지 줄곧 병원 신세를 져온 주연이를 챙기느라 엄마할머니는 빚더미에 앉은 지 오래다. 지난해 파산신청을 한 뒤 회생절차를 밟고 있고 임대아파트 월세는 2년 치가 밀려있다. 남편이 공장에서 일하며 벌어오는 150만원이 수입의 전부. 매달 들어가는 치료비와 활동보조비, 채무상환만으로도 통장은 늘 마이너스다. 한동안 주일에도 새벽예배를 드린 뒤 경기도 펜션촌을 돌며 청소일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김씨는 최근 난청과 이석증이 심해져 고통을 받으면서도 비용이 엄두가 나질 않아 검사를 미루고 있다. 그는 “돈이 부족해 심장초음파, MRI(자기공명영상) 검사 등 주연이에게 당장 필요한 검사도 못 해주는 게 미안할 따름”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삶이 고달프고 팍팍하게 느껴질수록 김씨는 주연이를 더 가까이 끌어안고 있었다. 장애인활동보조인 교육을 받는 것도 장애인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주연이의 자립을 돕기 위해서다.
“네 살 때인가. 옹알이만 하던 주연이가 처음 뱉은 단어가 ‘엄마’였어요. 제게는 하나님이 주신 세상 가장 귀한 딸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주연이를 일으키실 거예요.”
엄마할머니는 누워있던 딸을 안은 채 ‘반짝반짝 작은 별’을 불렀다. 별을 표현하는 엄마의 손짓을 바라보던 주연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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