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장윤재] 존재의 깊은 곳에

입력 2019-04-26 04:08

곡마단에서 오색무늬 옷을 걸치고 피리 소리에 발맞춰 춤추는 곰을 본 적이 있는가. 대체 곰은 무슨 흥이 나서 그렇게 신나게 춤을 추는 것일까. 비밀은 ‘조건반사’다. 철판 위에 곰을 올려놓고 불을 땐다. 바닥이 뜨거워지면 곰은 번갈아 발을 구른다. 그때 옆에서 피리를 분다.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 마침내 조건반사 현상이 일어난다. 이제 곰은 피리 소리만 들어도 저도 모르게 두 발을 구르며 춤을 춘다. 멋모르는 관중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돈은 재주를 부린 곰이 아니라 그 곰을 고문한 주인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과연 이 이야기가 곡마단 곰만의 이야기일까.

우리는 정보화시대를 산다. 얼마 전 우리는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한 나라가 됐다. 모두가 24시간 초고속 인터넷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보다 남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더 신경을 쏟으며 사는 것 같다.

창조성과 개성이 요구된다는 정보화시대에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욱 남들의 기준에 맞춰 살려 하는 것 같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생각하는 갈대’가 아니다. 남들의 장단에 춤을 추는 곰과 같은 존재들이다.

갈릴리호수는 끝에서 끝이 보일 정도로 작은 호수지만, 2000년 전 사람들은 그곳을 ‘바다’라 불렀다. 남북으로 6000㎞를 관통하는 거대한 단층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언제나 사나운 풍랑이 일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호수의 어부들에게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었다. 절대로 깊은 곳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는 찌든 가난이었다. 어느 날 길을 가시던 예수님이 고기잡이에 지친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을 보셨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 바다 한가운데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 보라.”(누가복음 5:1~11) 이상한 일이었다. 한 번도 그래 볼까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아 엄두도 내지 못하던 일이었다. 하지만 처음 뵙는 그분의 말씀 속에는 이상한 힘이 느껴졌다. 사나운 풍랑도 잠재울 것 같은 신비한 힘이 느껴졌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보았다.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게 되었다”고 성서는 기록한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은 남에게 인정받는 것을 통해 행복을 느끼려 한다. 하지만 그 행복감은 남들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늘 불안하기 만하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며 산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인 ‘척’하는 사람이다. ‘자기다움’이 없는 사람이다. 자기다움은 곧 ‘자기존중’이다.

유사 이래 나와 똑같이 걷고 똑같이 말하며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고유하며 독창적인 작품이다. 자신의 인생을 값지고 보람있게 산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첫째로 남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둘째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꾸준히 밀고 나갔다는 점이다. 그들 역시 기뻤다 슬펐다를 반복하는 인생을 살았지만 그들이 기뻤을 때는 주위 누군가가 칭찬을 해주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과 감사가 들 때이다. 그들이 슬펐을 때는 주위의 사람들이 그들을 인정해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스스로 성실히 추진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가장 깊은 곳에 계신다. 우리의 숨결보다 더 우리에게 가까이 계신다. 우리 영혼의 배를 저 갈릴리바다 가장 깊은 곳으로 저어가자. 거기서 우리 영혼의 그물을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존재케 하시는 존재 자체인 그분에게 내려 보자.

말로 다할 수 없는 풍성한 은혜와 자존감 그리고 넘치는 생의 기쁨을 “그물이 찢어지도록” 건져 올릴 것이다.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교목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