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유명한 요리사 레시피도 그대로 되는 음식은 없다

입력 2019-04-27 04:05

기대는 금물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의 대표 작가 줄리언 반스가 음식 에세이를 썼다고 하면 비범한 요리 기술을 최고의 미문으로 쓴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니다. 남자는 모름지기 부엌에 가는 게 아니라는 고루한 전통 속에서 자란 반스가 뒤늦게 주방으로 들어가 그야말로 책으로 요리를 ‘공부’하면서 경험한 것을 쓴 글 17편을 모은 것이다.

“걱정스레 미간을 찌푸리고 열심히 요리책을 들여다보는 독학 요리사인 나는 누구 못지않게 현학적이다.” 이 말처럼 그는 레시피대로 하면 맛있는 음식이 될 거라는 믿음을 고수한다. 이런 식이다. 재료를 계량할 때 아내에게 묻는다. “책에서 스푼에 찰랑찰랑하게 넣으라고 그래, 아니면 수북이 넣으라고 그래?” 아내는 “그런 말은 없어. 어느 쪽도 아닌 거지”라고 한다.

그러면 반스는 양념을 스푼에 평평하게 담으며 안심한다. 레시피 순서가 잘못 매겨졌다고 확신한 날엔 저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완성한 요리는 이상하게도 늘 뭔가 허술하다. 그는 자신이 한 요리를 식탁에 차리며 “사진과 다르다”고 투덜거린다. 아내는 “사진과 같으리라 기대하는 건 요정을 믿는 것과 같다”며 남편을 달랜다.

반스는 100권이 넘는 요리책을 사 모으며 요리 경험을 쌓고, 요리를 통해 삶의 지혜를 얻어 간다. 아무리 유명한 요리사의 레시피라도 그대로 되는 음식은 없고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것은 숭고하다. 결국 이런 격언을 완성한다. “성실한 요리는 평온한 마음, 상냥한 생각, 그리고 이웃의 결점을 너그럽게 보는 태도를 은밀히 증진시킨다. 요리는 우리에게 경의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

반스가 요리에는 젬병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은 하나같이 유머러스하다. 레시피에 학구열을 불태우며 전전긍긍하고 불평하는 모습은 권위 있는 대작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앞치마를 두르고 투덜거리며 요리하는 그의 모습이 정겹다. 인간적이란 느낌을 준다. 소설을 그렇게나 잘 쓰는 반스가 요리까지 잘하면 뭔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위트 있으면서 지적인 책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