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KIA 타이거즈의 마운드가 심각하게 붕괴된 상태다. 특히 선발 불펜 가릴것 없이 제구력에 허점을 보이면서 볼넷 왕국으로 전락했다. 시즌 초임에도 2년 전 우승 당시에 비해 무려 2배를 웃도는 볼넷을 허용하고 있다. 볼넷이 많으면 위기를 자초하는 경우가 많고 팀 전체의 수비 집중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야구계에서는 가장 피해야 할 요소로 여겨진다.
24일 한국야구위원회(KBO) 등에 따르면 KIA 투수들은 26경기를 치른 가운데 올 시즌 리그에서 가장 많은 134볼넷을 기록했다. 경기당 평균 5개를 웃도는 수치다. 볼넷이 가장 적은 두산 베어스(71개)보다 2배 가까이 많다. 최근 8연패 기간에는 총 48개의 볼넷을 기록, 심각성을 더했다.
KIA 투수 중 가장 많은 볼넷을 기록한 선수는 신인 선발 김기훈이다. 18개의 볼넷을 기록했다. 올해 21⅓이닝을 던진 점에 비춰보면 매 이닝 볼넷을 한 개 가량 허용한 셈이다. 김기훈이 구위가 좋지만 한순간 무너지는 경우가 많은 것도 제구력 부족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외국인 투수 조 윌랜드(2승 2패·평균자책점 5.93)와 제이콥 터너(3패·5.84)가 각각 14볼넷으로 뒤를 잇는다. 짧은 이닝을 던지는 불펜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다. 주전 마무리로 나서다 부상으로 낙마한 김윤동과 이준영이 각각 11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하준영도 9개나 된다.
볼넷 개수가 늘어난 것은 제구력이 흔들리고 마운드에서 자신감이 줄었다는 의미다. 결국 초조한 나머지 가운데로 공을 던지다가 장타를 쉽게 허용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투수의 다른 지표들도 안 좋을 수밖에 없다.
KIA의 시즌 평균자책점은 6.30으로 10개 구단 중 가장 높고, 유일하게 6점대다. 피안타와 실점도 제일 많다. 피안타와 볼넷이 많다 보니 이닝당 출루허용률(1.76)도 가장 높다.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실점 이하 투구)는 8회로 한화 이글스(5회)에 이어 두 번째로 적다. KIA가 최하위 수준으로 추락한 데에는 마운드의 불안이 가장 크다.
문제는 KIA 투수들의 제구력이 원래부터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의 경우 같은 기간(개막 후 26경기)에 볼넷이 73개에 불과, 전체 구단 중 가장 적었다. 우승 당시인 2017년에는 65개로 더 적었고, 볼넷 순위는 8위였다. 시즌 전체(144경기)로 보면 2017년 434볼넷, 지난해 445볼넷이었다. 고작 26경기만 치렀음에도 2017년 전체 볼넷 수의 3분의 1에 다다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그간 KIA 마운드는 베테랑이 중심을 잡은 가운데 영건들이 가세해 힘을 내는 구조였다. 지난해만 해도 양현종과 외국인 선수 헥터 노에시가 원투펀치로 활약했다. 두 선수는 2017년 40승, 지난해 24승을 합작했다. 그러나 올해 이런 연결고리가 끊기면서 남은 투수들의 부담이 커져 자멸하는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부동의 에이스 양현종(4패·6.92)이 1승도 못하는 부진에 빠진데다 외국인 투수들도 기대치에 못미친다. KIA는 부상자도 많아 결국 신예 투수들을 추가 투입하는데 이들이 과중한 부담을 떠안다가 페이스를 잃으면서 팀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야구계 관계자는 “KIA 투수들이 전반적으로 처져 있고, 과부하에 걸린 모습이다. 당분간 힘든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